차두리(37)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의 현역시절 별명은 ‘차미네이터’였다. 빠른 스피드와 저돌적인 몸싸움에 수비수가 나가떨어지는 모습은 말 그대로 ‘추풍낙엽’이었다. 오죽하면 친한 후배 기성용(28ㆍ스완지시티)은 “두리 형은 공보다 빠르다. 패스를 길게 줘도 다 받아낸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차 코치는 지금 은퇴해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몸 관리를 잘해 스피드는 현역 때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후배 신영록(30)을 위해 어느 때보다 느린 걸음으로 큰 감동을 줬다.
차 코치와 신영록은 4일 2018 평창동계올림픽 ‘그룹성화봉송주자단’의 첫 주자로 성화봉을 들고 부산시내를 달렸다. 전 국가대표 축구 선수 신영록은 2011년 경기 도중 부정맥에 의한 심장마비로 갑자기 쓰러졌다. 2%라는 희박한 소생가능성을 뚫고 46일 만에 의식을 되찾아 기적의 아이콘으로 불렸다. 지금은 상태가 많이 좋아졌지만 세밀한 근육을 자기 의지대로 쓸 수 없어 계속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
차 코치는 앞으로 축구 지도자를 꿈꾸는 후배 신영록에게 응원의 기운을 불어넣기 위해 성화주자로 함께 했다. 두 사람은 약 200m의 구간을 느리지만 힘차게 이동해 큰 박수를 받았다. 부산 시민들은 “차두리 파이팅” “신영록 잘한다”를 외쳤다.
차 코치는 지난 3월 2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시리아와 A매치 때도 특별히 신영록 초청하는 등 줄곧 많은 관심을 보여왔다. 그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축구를 사랑하고 재활에 매진하고 있는 신영록의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며 “신영록의 새로운 꿈인 축구 감독의 길에 많은 사람들이 응원을 보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신영록 역시 “두리 형이 일생일대의 기회를 주고 응원해준 만큼 꼭 꿈을 이루고 싶다. 두 다리로 그라운드에 서서 선수들을 지도하는 모습을 보여줘 모두에게 희망과 감동을 전하고 싶다”고 화답하며 미소 지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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