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일 1박2일 일정으로 방한한다. 지난 6월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가 트럼프 대통령과의 상견례 성격이 강했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국빈 방한은 친교(親交) 그 이상이 되어야 한다. 북한의 거듭된 도발로 한반도의 긴장이 현재 최고조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트럼프의 예기치 않은 도발적 언어가 자칫 한반도 안보 상황과 나아가 한미동맹을 복잡하게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문제적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의전에 집중하기보다는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와 연계하여 실천 가능한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청와대가 할 일이다. 트럼프의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을 개선시킬 방법이 필요하다.
첫째,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가 취할 대북 압박정책을 두고 공조의 폭과 깊이 그리고 방법 등을 정교하게 작성해야 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 트럼프 대북정책의 특징 중 하나가 강경 일변도이다. 트럼프는 ‘최대 압박과 관여’라는 이름으로 ‘꼬마 로켓맨’ 김정은을 향해 ‘화염과 분노’를 멈추지 않고 있다.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한 걸음 더 들어간 아베 일본 총리가 트럼프에게는 환상의 짝이다. 미국과 일본이 펼치는 주전론(主戰論)에 한국의 주화론(主和論)이 비집고 들어갈 공간은 점차 좁아지고 있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은 엊그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면서 그는 화학무기인 VX 신경작용제를 사용해 김정남을 암살한 사건을 들어, 북한이 테러지원국 자격에 부합한다고 강조했다. 2008년 이후 9년째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된 북한을 테러지원국가로 다시금 호명(呼名)하려는 것이다.
육군 중장인 맥매스터는 이어 트럼프의 대북 발언 수위에 조정이 있을지에 관한 물음에 “대통령이 언어를 조절할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한반도 위기가 트럼프의 방한으로 다소 해소될 것으로 기대했던 정부로서는 홈그라운드 이점을 제대로 살리지도 못하고 오히려 역습을 당할 수 있음에 대비해야 한다.
둘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하여 트럼프의 폐기 겁박에 밀려 개정협상에 착수한 한국은 결국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FTA 운동장이 한층 기울어지는 셈이다. 그 결과 누군가는 이득을 보고, 반대로 또 다른 누군가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예상 못한 것은 아니지만 국빈 방문의 뒤끝이 개운치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정부는 애당초 원하지 않았던 개정협상에 따라 미국에 무엇을 내주고 무엇을 얻게 되었는지 셈법에라도 밝아야 하지 않을까.
해박한 경제 지식에다 촌철살인 비유법으로 많은 독자들을 가졌던 경제학자이자 언론인 정운영은 생전에 셈범과 관련하여 재미있는 중국의 해학을 소개한 적이 있다. 두 친구가 함께 술을 담그기로 하고서 각자의 일과 몫에 대해 의논했다. “나는 물을 댈 테니 자네는 쌀과 누룩을 내기로 하세.” “그러면 나중에 어떻게 가르지?” “그야 물을 댄 내가 술을 차지하고, 건지를 낸 자네는 지게미를 가져야지.” “…?”
그가 전하고자 했던 것처럼 미국과 FTA 개정협상에서 쌀과 누룩을 내고도 지게미만 갖는 엉터리 셈법이 있어서도 안 되겠지만 지게미만 갖고도 술을 차지했다고 우기는 일이 더는 없었으면 한다. 이는 국격의 문제이기도 하다.
셋째, 국가 간 친소 관계가 지도자의 사적 호감과 태도에 결정되는 일은 국제관계에서는 상식이다. 트럼프의 딸 이방카를 위해 일본이 극진하게 차려준 생일 파티에서 보았듯이 미국 금수저와 일본 금수저 간 회담은 ‘케미’가 통할 것으로 예상됐다. 반면에 일본 특유의 환대를 경험한 후 서울에 도착하는 트럼프의 눈에 변방의 작은 나라의 핵과 미사일,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방위비분담금, FTA 등은 재미없는 이슈이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과 중국으로부터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문 대통령이 담대하게 전달해주기를 기대한다. 한반도의 상황이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해서다.
이병철 평화협력원 부원장ㆍ북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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