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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석의 손(手)축구] 김호곤을 위한 변명

입력
2017.11.04 04:4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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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곤(66)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겸 기술위원장이 ‘히딩크 사태’에 책임을 지고 자신 사퇴했다. 지난 6월 기술위원장에 오른 지 4개월 만의 일이다.

한국 축구가 9회 연속 월드컵에 가느냐 마느냐 벼랑 끝에 몰렸던 지난 9월 우즈베키스탄 원정에서 만난 김 위원장은 32년 전 이야기를 털어놨다. 수비수였던 그는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스물아홉의 젊은 나이에 은퇴해 지도자 길을 걸었다. 한국이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이후 32년 만에 본선 무대를 밟았던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당시 김 위원장이 국가대표 코치였다. 그리고 32년이 흘러 또 한 번 백척간두에서 기술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코치로 32년 만에 본선 티켓을 땄는데 또 32년 후 기술위원장으로 같은 운명을 맞았으니 운명이 묘하다”며 “걱정 마라. 32년 전처럼 이번에도 반드시 본선 티켓을 딸 것”이라고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초조해 보였다.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면 신태용(48) 대표팀 감독과 함께 ‘만고의 역적’이 될 운명이었으니 떨리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최종예선 당시 김정남(왼쪽) 감독을 보좌했던 김호곤 코치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최종예선 당시 김정남(왼쪽) 감독을 보좌했던 김호곤 코치

김 위원장은 1993~99년까지 연세대 감독, 2005~08년까지 축구협회 전무이사를 지냈다. 프로축구 대우 로얄즈(2000~02), 울산 현대(2009~13) 감독도 역임했다. 축구명문 동래고-연세대 출신에 축구협회 요직을 거쳤고 현대그룹이 운영하는 프로 클럽 사령탑을 했으니 그를 ‘현대가(家)의 충복’이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실력도 없이 자리만 지켰다고 평가절하해서도 안 된다. 축구인들은 농반 진반 “연세대 감독을 5년 이상 했으면 지도자로서 실력은 검증된 것”이라고 한다. 울산을 이끌 때는 2012년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우승도 차지했다. 이듬 해 정규리그 우승을 눈앞에서 놓쳤지만 탄탄한 수비에 이은 번개 같은 역습으로 ‘철퇴축구’란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그에게 마지막 남은 응어리가 있다면 국가대표 감독이었다. 그 동안 몇 번 기회가 있었지만 모두 막판에 물을 먹었다. 김 위원장은 러시아 월드컵 때 감독으로 못 이룬 한을 기술위원장으로 풀겠다는 의지가 컸다. 일부 누리꾼들은 그를 ‘노욕의 화신’으로 난도질했지만 김 위원장이 자리에 연연했다 보지 않는다. 신태용 감독을 도와 러시아에서 쾌거를 써보겠다는 열망이 강했을 거다. 하지만 생각지도 않은 ‘히딩크의 덫’에 걸려 낙마했다.

'히딩크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겸 기술위원장. 대한축구협회 제공
'히딩크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겸 기술위원장. 대한축구협회 제공

한국 축구에서는 국가대표 사령탑 못지 않게 기술위원장도 ‘파리 목숨’이다. 역대 기술위원장 중 명예롭게 물러난 사례는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거스 히딩크(71ㆍ네덜란드) 감독과 4강 신화를 합작했던 이용수(58) 축구협회 부회장 딱 한 번뿐이다.

김 위원장 사퇴가 더 안타까운 건 국가대표 성적이나 기술위원장으로서 자질 문제가 아니라 엉뚱한 사건에 휘말려 물러났기 때문이다. 이는 김 위원장의 역량이나 그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분명 한국 축구의 비극이다. 그가 책임졌다고 끝낼 일이 아니다. 누군가의 농간에 한국 축구가 뿌리부터 흔들리는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축구협회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값비싼 대가를 치른 이번 사태가 주는 교훈이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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