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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반말에 대한 단상

입력
2017.11.03 14:15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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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를 배울 때 가장 어려운 점 중의 하나는 말하는 사람과 상황에 적절한 화법과 화체로 말을 하는 것이다. 어떤 단어를 어떻게 사용하는가보다도, 어떤 어순으로 말을 하는 것보다도 어떤 화법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 너무 복잡하다 보니 가능하면 누구에게나 ‘~요’를 붙여 말하는 것이 속 편할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사람에게 ‘~요’를 붙이는 것은 “나는 당신과 별로 친하지 않습니다” 하고 선을 긋는 것 같아 마음에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얼만큼 친해야 반말을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필자에게는 같은 대학을 다녔지만 다른 과를 나온 대학원 선배가 있다. 이 선배에게 가끔은 ‘~요’를 붙이기도 하고, 때를 봐서 안 붙이기도 하는데, 한국어가 모국어인 나도 이 선을 가늠하는 것이 참 쉽지 않다. 영어권에서 친구는 나이를 따지지 않는다. 나에게는 90세가 넘은 노르웨이인 할아버지 친구도 있다. 이 할아버지에게 말을 할 때나 갓 스물이 넘은 학생들을 대할 때나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을 대할 때나 영어에서는 한결같이 같은 화법과 화체를 사용한다. 물론 이와 같이 화법과 화체의 복잡다단함이 한국어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불어에서 2인칭 대명사 ‘tu’ 나 ‘vous’의 선택은 그렇게 쉬운 문제는 아니다. 우리말처럼 복잡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계량하기 힘든 친근함의 정도를 잘 따져서 선택을 해야 적절한 대화를 이루어 갈 수 있다.

반말 사용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도 많이 있다. 언어학자들 중에는 반말 사용을 우리사회의 고질적 문제인 소위 ‘갑질’의 일종이라고 극단적으로 보는 이들도 꽤 있다. 극단적인 언어 인권론에서는 반말의 사용이 인권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모두가 평등한 사회에서 반말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말을 놓아도 되는지에 대한 동의와 이에 따른 공감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말을 놓을 경우는 큰 분쟁과 다툼을 일으키기도 하는 것을 우리는 드물지 않게 접한다.

그렇다면, 반말을 항상 나쁜 것일까?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서로 말을 해야 하는 것일까? 대부분의 문법책에서는 나이와 사회적 지위라는 공식에 맞추어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존댓말을 쓰고,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말을 낮추는 것을 원칙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게 다는 아니다. 나이가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상대방의 양해를 구하거나 묻지도 않고 대뜸 처음 보는 사람에게 반말을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런 상황에서는 정말 언어 인권론자의 말처럼 존댓말과 반말이 언어인권을 억압하는 표현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말을 놓아도 되는지에 대한 동의와 공감이 적절하게 이뤄진 상태에서 반말은 서로에 대한 신뢰의 표현이며 나이와 사회적 지위를 넘어 진정한 친구 되기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반말의 문제점은, 사실 반말의 문제가 아니라, 반말을 사용하는 방법과 태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반말의 사용시에 대개 함께 나타나는 것 중에 하나는 호칭의 변화이다. “말 놓으세요” 하고 한 사람이 건의를 하는 것이고, 그 건의가 받아들여지면 한국인들은 이내 상대방을 ‘형’ ‘누나’ ‘언니’ ‘오빠’와 같은 친족 호칭어를 사용하여 부르기 시작하며 서로를 더 이상 남이 아닌 가족과 같은 존재로 받아들인다. 이와 같은 화체 변화가 일어나는 언어는 그리 많지 않다.

반말의 부정적 기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신뢰 속에 반말 사용이 이뤄지면 우리는 나와 혈연 관계가 없는 이들과도 가족과 같이 친근한 관계를 맺으며 끈끈하고, 털털하며 정겨운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 까 생각해 본다.

지은 케어 옥스퍼드대 한국학ㆍ언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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