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조속한 법제화를 위한 국회의 협조를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공수처) 법안이 통과되면 대통령인 저와 제 주변부터 수사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가 대통령과 국회의원, 판ㆍ검사 등 주요 권력자의 비리를 중점적으로 수사하는 독립기관이라는 점에서 허튼 말은 아니다.
정부의 공수처 신설 법안은 이미 마련됐다. 법무ㆍ검찰개혁위원회가 발표한 권고안을 법무부가 수정해 지난달 15일 발표했다. 애초의 권고안에서 대폭 후퇴했다는 거센 비판에도 정부 안이 관철된 것은 “국회 통과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법무부 장관의 설명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국회가 공수처장 후보 2명을 추천하면 대통령이 1명을 임명하는 개혁위 권고안을 국회가 1명만 추천하도록 고친 것이 대표적이다. 수사 검사를 절반으로 줄이고 수사 대상을 일부 축소한 것도 ‘슈퍼 공수처’라는 야당의 우려를 감안한 것이다.
정부의 국회 통과를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야당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아예 ‘공수처 반대’를 당론으로 정한 채 반대 입장을 굽이지 않고 있다. 홍준표 대표는 “지금 있는 검찰도 충견처럼 부리고 있는데 더 사납고 말 잘 듣는 맹견 한 마리를 새로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정부 안을 비판했다. “야당과 정권에 밉보인 공직자에 대한 표적 사정과 정치 보복이 주업무가 될 것”이라는 게 반대 이유다.
하지만 공수처장을 사실상 국회에서 임명하게 된 마당에 대통령이 야당의원을 겨냥할 거라는 주장은 억측에 불과하다. 공수처에 대한 별도의 견제장치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국회 심의과정에서 보완하면 될 일이다. 자유한국당은 현 정권의 적폐청산에 대해 “지난 정권만 들쑤시지 말고 문재인 정부 비리도 찾아서 단죄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라도 공수처는 하루빨리 설치돼야 한다. 대통령도 공수처 법안을 통과시켜 현재의 권력을 감시해 달라고 하는 판에 야당이 거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9년간의 검찰 모습은 공수처 도입의 당위성을 극명하게 보여 줬다. 옥상옥이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권력자들의 비리를 단죄하고 방지할 수 있는 최선책이다. 공수처 지지여론도 80%를 웃돈다. 과거에도 공수처 설치는 집권세력과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검찰의 반대로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자유한국당은 국민 비판을 면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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