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2일 대기업집단(재벌)의 공익재단을 전수조사하고 지주회사의 수익구조 실태도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날 5대 그룹 전문 경영인들과 정책간담회를 열고 “기업들의 자발적인 개혁 의지에 대해 여전히 의구심이 남아있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며 이같이 밝혔다. 개혁의 속도를 끌어올리겠다는 의욕의 표현이다.
김 위원장이 밝힌 공익재단 운영실태 전수조사는 우선 공정위에 신설된 기업집단국이 맡는다. 설립 취지에 부합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지를 점검한다는 것이다. 공익재단이 편법승계 창구로 이용됐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재벌에게는 극히 민감한 사안이다. 김 위원장이 소장을 맡았던 경제개혁연대는 지난해 공익재단 편법운영 사례 중 하나로 삼성생명공익재단의 삼성물산 주식 매입(200만주)을 거론한 바 있다. 공익재단이 지주회사 격인 삼성물산 주식을 취득하는 것은 지배권 승계를 위한 편법이라는 시각이다. 김 위원장은 또 지주회사 수익구조에 대한 실태조사도 벌여 브랜드 로열티, 컨설팅 수수료, 건물임대료 등이 지주회사 취지에 부합하는지를 검토하고, 일감 몰아주기 등 부당 지원행위도 점검키로 했다. 근거 없이 계열사에 대해 ‘통과세’를 징수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김 위원장은 일단 기업의 개혁 움직임에 대해 “긍정적인 출발이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고 했다. 주마가편을 하겠다는 뜻으로 재계는 적지 않은 부담을 느낄 만하다. 자율 개혁을 표방하지만, 속도가 늦거나 규모가 부실하면 공정위가 직접 칼을 들이댈 수 있기 때문이다. 재벌의 지배구조 개혁과 소유ㆍ경영의 분리 등이 하루아침에 가능한 것은 아니다. 삼성이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고, 롯데가 순환출자 고리를 대폭 끊어내는 등 애를 쓰고 있지만, 오랜 세월 이어져 내려온 오너 중심체제를 완전히 포기하기는 어렵다. 재계는 ‘변화에 필요한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고, 김 위원장도 조건부로 동의했다.
우리 경제는 소수 재벌에 경제력이 집중되고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활력을 잃고 있다. 따라서 경제력 집중억제와 지배구조개선은 다급한 과제다. 재벌이 진정성을 갖고 개혁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글로벌 스탠더드와 동떨어진 제도로 기업에 족쇄를 채우는 것은 글로벌 경쟁력을 좀먹는 것이기도 하다. 개혁이 시장을 위축시키지 않도록 세심히 배려하고 속도 조절에 신경을 써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시장의 무너진 질서를 회복하는 선에서 그쳐야지, 새로운 질서의 강요로까지 나아가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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