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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정의는 독점, 불의는 나누는' 정치

입력
2017.11.02 17:5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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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학 허물' 감싸는 청와대 '내로남불'

문 대통령 "공정ㆍ정의" 의지에 의구심

방송법 개정안 신속처리로 악순환 끊길

문재인 대통령이 1일 국회 시정연설에 앞서 국회의장실에서 5부 요인 및 여야 지도부와 환담하며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1일 국회 시정연설에 앞서 국회의장실에서 5부 요인 및 여야 지도부와 환담하며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솔직히 그냥 넘어갔으면 했다. 문재인 정부 내각의 마지막 퍼즐인 홍종학 중소벤처부 장관 후보자의 정치적 도덕적 문제 말이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새 정부에 원죄가 있다고 해도 출범 6개월이 되도록, 또 최장기 미완성의 기록을 세우며 내각 조각을 매듭짓지 못하는 것은 이유가 뭐든 더 두고볼 수 없는 일이다.

홍 후보자 가족의 격세 상속과 금전대차 거래, 자녀 국제중 취학 등이 공직자의 처신에 어울리지 않고 본인이 평소 주장해온 소신과도 명백히 어긋나 '내로남불' 논란을 피해갈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또 검증 과정에서 조금만 신경을 썼어도 걸러질 일들이 용인되고 넘어갔으니 청와대의 눈높이가 돌연 낮아졌다는 우려도 든다. 하지만 후보를 찾는 과정에서 될 만한 사람은 개인적 사유로 거절하고 대안을 찾으면 주변에서 반발하는 등 인사 라인의 고심이 컸으니, 편법과 탈법을 넘나드는 하자 정도라면 봐줄 만했다.

그러나 청와대가 당연한 합리적 의심에 대해 "본질과 벗어난 논란"이라고 일축하며 '합법적이고 상식적인' 거래라고 감싸면 얘기가 달라진다. "쪼개기 증여는 국세청이 권하는 합법적 절세 방식"이라거나 "개인적 처신에 문제는 있을지언정 탈세나 위장 전입 등 '5대 인사기준'에 위배되는 결격사유가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어안이 벙벙해진다. 5대 인사원칙의 취지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높은 책임감이 아니라 고작 불법만 아니면 된다는 것인가. 정의당 노회찬 의원의 말처럼 "도대체 이 정부가 어떤 철학과 가치로 무장하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하는 지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엊그제 새해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국민 누구라도 낡은 질서나 관행에 좌절하지 않고 평등하고 공정한 기회를 갖도록 바꿔 나가겠다"며 "보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는 국민이 요구한 새 정부의 책무인 만큼 정치권 모두 이것만은 공동의 책무로 여겨 달라"고 주문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4당 대표 회동에서 정치 보복 논란과 관련, "적폐청산은 처벌이나 문책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불공정 특권구조를 해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홍 후보자의 잔영을 비추면 어떤 결론이 나오는가. 그래도 "바쁘니 그냥 가자"일까.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비판받는 큰 요인의 하나는 쉽게 말을 바꾸고 견강부회한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MBC 사태와 관련, 그는 문재인 정부의 방송 탄압 혹은 장악 음모를 저지한다며 두번이나 정기국회를 멈춰 세워 빈축을 샀다. 9월 초엔 노동관계법 위반 혐의로 김장겸 사장에게 발부된 체포영장을 문제삼았고, 지난달 말엔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보궐이사 선임을 강행한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을 겨냥했다. 두 사안 모두 한국당이 발끈할 만했고 절차도 매끄럽지 않았으나 "군사정권도 하지 못한 언론 파괴 공작" 운운한 것은 실소를 자아낸다. MBC 사태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발언일 뿐 아니라 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집권하고 홍 대표가 원내대표였던 2008년 당시 KBS 정연주 사장을 몰아낼 때 있었던 일을 외면하니 말이다. 홍 대표는 사안의 중대성과 긴급성 잣대를 들이대며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고 강변하지만 제 발등만 찍는 느낌이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을 하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공영방송 장악' 등의 현수막을 들고 항의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을 하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공영방송 장악' 등의 현수막을 들고 항의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그런데 참 이상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는 공영방송의 공정성ㆍ독립성 논란을 뿌리뽑자고 지난해 여름 민주당 등 야당 주도로 방송법 개정안을 만들어놓고 여야 모두 딴전만 피운다. 개정안은 KBS 이사회와 MBC 대주주인 방문진 이사를 각각 13명으로 늘려 여당이 7명 야당이 6명씩 추천토록 하되 사장은 이사진 3분의 2 찬성으로 선출하는 특별다수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지난 8월 방통위 업무 보고 자리에서 소신을 무력화하는 안이라며 재검토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이후 민주당은 말이 없다. 여당 시절 이 안을 반대했던 한국당은 엉뚱한 곳에서 내내 헛발질이다.

정의와 공정을 찾는 길이 꼭 멀리 있을까. '내가 하면 정의, 네가 하면 불의' 식의 독선을 버리고 '남이 네게 해 주길 바라는 그대로 남에게 해 주면' 된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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