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운동 때도 찾지 않았던 곳
미얀마 무슬림 소수민족 로힝야족에 대한 군부의 유혈 탄압을 방관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아웅산 수치 국가자문역이 2일 사태 현장을 전격 방문했다. 유혈 진압 시작 2개월만이다. 사태 해결에 좀처럼 나서지 않고 있는 데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행보로 보인다.
미얀마타임스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이날 오전 수치 자문역은 항공편으로 서부 라카인주 주도인 시트웨로 이동한 뒤 공군 헬기로 북부 마웅토 지역을 둘러봤다. 나프강이 흐르는 방글라데시 접경지역으로, 미얀마 군이 불태운 마을이 있는 곳이다.
이날 방문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현지 매체에 종사하고 있는 한 소식통은 “전날 밤 9시에 첩보를 입수했지만 확인 요청에 모두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며 이번 라카인주 방문은 극비리에 준비 돼 아주 갑작스럽게 이뤄진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라카인주는 수치 자문역이 지난 2015년 선거운동 때도 방문하지 않았던 곳”이라며 지난 2010년 이후 첫 방문”이라고 말했다. 라카인에 거주하는 로힝야족은 2010년 총선 당시에는 ‘거주등록카드(white card)’를 통해 투표권을 행사했지만, 이후 박탈당했다.
하지만 군용 헬길로 시트웨 공항을 이륙한 수치 자문역이 ‘인종청소’ 논란 현장 마을에 착륙을 했는지, 또 나머지 로힝야족 거주지역을 방문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앞서 미얀마타임스는 로힝야족 유혈사태 해결을 위해 설립한 UEHRD(인도적 지원ㆍ재정착ㆍ개발을 위한 연합 기업)의 대표단을 이끌고 라카인주를 방문, 난민 구호 및 송환, 재정착 및 재활 프로그램을 점검한다고 전했다.
미얀마의 최고 실권자인 아웅산 수치는 그 동안 로힝야족 ‘인종청소’ 주장을 부인하면서 국제사회의 따가운 비난을 받았다. 일각에서는 1991년 수치에게 수여된 노벨평화상을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특히 지난 9월 19일 국정연설에서는 “모든 인권침해와 불법적인 폭력을 규탄한다”면서도 미얀마군의 잔혹 행위를 언급하지 않았고, 라카인주 이슬람교도 가운데 절반은 폭력사태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해 논란을 키웠다. 이후 국제사회의 인종청소 비판 여론은 더욱 거세졌고, 미얀마군에 대한 제재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현지 소식통은 “국정연설에도 불구하고 비판 여론이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다른 이벤트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말해, 국제 사회의 시선을 다분히 의식한 방문임을 시사했다.
미얀마와 방글라데시는 난민 송환을 위한 협상에 돌입했지만, 양측의 이견으로 진전을 보지 못한 채 송환 지연 책임을 서로 전가하고 있다. 미얀마는 방글라데시가 천문학적인 규모의 구호기금 때문에 의도적으로 송환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방글라데시는 미얀마 측은 일일 송환 인원을 300명으로 제한하고 있는 난민 송환 협정 절차를 문제 삼아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로힝야족 반군단체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ARSA)은 미얀마에서 핍박받는 동족을 보호하겠다며 미얀마에 항전을 선포하고 지난 8월 25일 경찰초소 30여 곳을 습격했다. 미얀마군은 ARSA를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소탕전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고 로힝야족 60만명 이상이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피난했다.
외신들은 수치가 현장을 방문한 이날에도 나프강을 건너 방글라데시로 들어오는 로힝야족들의 사진을 현장에서 전송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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