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일 간 진행됐던 문재인 정부 첫 국정감사가 지난달 31일 사실상 종료됐다. 여의도에 있는 모두가 큰 산을 넘은 듯할 것이다. 하지만 이 기간 똑같이 고통을 받고도 속으로만 삭여야 했던 존재가 있다. 바로 국회의 ‘을(乙)’, 입법보조원과 국회 인턴이다.
이들의 열악한 처우를 파악하기 위해, 국회 입법보조원과 인턴들이 자주 사용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서 국정감사 기간(준비기간 포함)이었던 9~10월 올라온 게시물 70여 개를 살펴봤다.
자신을 입법보조원이라 소개한 글쓴이는 지난달 15일 “배운다는 명목 아래 교통비만 받고 국정감사도 치르고 야근과 휴일근무도 한다”며 “인턴은 돈이라도 받는다, 물론 그것도 엄청난 박봉이지만. 입법보조원은 직원도 아니고 자원봉사자 신분”이라며 토로했다.
국회의원수당법 등에 따라 국회의원 1명은 보좌관, 비서관, 비서 그리고 인턴 2명까지 총 9명의 유급 보좌진을 둘 수 있다. 여기에 원외로 무급직 2명을 추가할 수 있는데 이들이 바로 입법보조원이다. 질의서ㆍ보도자료 작성, 법안 아이템 발굴 등 의원실 내 중요 임무를 맡지만 이들은 급여지급대상이 아니다. 국회 사무처 규정에서 이들은 채용의 대상이 아닌 단순 출입증 발급 대상에 불과해 관련 임금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스펙과 경험이 절박한 청년들에겐 이마저 간절하다. 국회 의원실채용 게시판에 올라온 입법보조원 모집 공고는 조회수가 1,000을 쉽게 넘어가고, 1~2명을 뽑는 데도 수십 명이 몰릴 정도다. 최근 입법보조원에 지원했으나 탈락한 최모씨(25)는 “미생이라도 되고 싶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무급임을 알지만 정계를 꿈꾸는 청년들은 입법보조원을 해서라도 국회에 발을 들이고 싶다”고 했다.
“오늘 내가 국회에서 죽으면 누군가는 들어주려나”… 인턴 처우도 매한가지
급여를 받는 인턴들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특히 국정감사 기간에는 정식 보좌관 못지않은 고강도의 업무를 소화하지만 급여는 고작 143만원. 최저임금 기준 하루 8시간, 주 5일 가량 근무 시 받는 월급과 비슷하다. 그러나 근로시간과 업무량은 이를 훨씬 초월한다. 한 2년차 국회 인턴은 “(국감 기간인) 10월 동안 주말 포함 매일 출근해 하루 14시간씩, 혹은 그 이상 일했다”며 “이렇게 특근, 야근을 해도 추가수당이 없었다”고 말했다. 즉 최저임금 이하의 급여를 받고 있는 셈이다.
한 국회 인턴도 대숲에 글을 남기고 “(국회는) 비정규직의 온상”이라며 “근로기준법에는 해고 시 1달 전에 통보하라 돼있지만 (국회는) 1시간 전에 얘기해도 전혀 문제없는 곳”이라 전했다.
정식 비서직 전환도 보장돼있지 않다. 한 네티즌은 대숲에 “모 의원님이 국정감사에서 산하기관이 청년인턴을 뽑아놓고 한 명도 채용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본인 일하시는 국회에는 내년이면 갈 곳 잃을 청년인턴 600명이 있다”며 모순된 현실을 고했다.
일부 의원, 보좌관의 ‘갑질’도 인턴을 힘들게 한다. 또 다른 대숲 이용자는 “가장 힘든 건 이렇게 해도 나한테 고마워하지 않고 본인(국회의원)이 뛰어나 국정감사 준비 잘한다 생각할 것”이라며 “그러다 망하면 내 탓 하겠지. 잘못 있을 때마다 보좌진이 했다며 나는 모른다는 의원님들. 그럴 거면 법안도, 질의서도, 홍보도 모두 누가 썼는지 공개하세요”라고 했다.
채용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에 이런 속앓이를 쉽게 공론화 하기도 어렵다. 특히 입법보조원의 경우 실제로 채용공고에서 ‘다른 의원실 인턴 채용 지원 등에 적극 추천’을 근무 조건으로 내건 경우가 많다.
국회 사무처는 지난 1일 “처우논란 관련해서 사무처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고 개선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며 “하지만 관련된 법안이 계류 중이어서 국회의원들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입법보조원의 경우는 국회 사무처가 관여하지 않아 말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박주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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