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2학년 때 한 선교단체를 통해 태국 치앙마이를 다녀온 적이 있다. 도착 첫날, 미세한 빛을 내는 투명한 몸의 게코(도마뱀붙이) 몇 마리가 벽을 기어오르며 '스스스' 소리를 내는 통에 한참을 뒤척이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의식이 수면상태로 넘어가자 기다렸다는 듯 땅 속 깊은 곳에서 아주 강한 힘이 온 몸을 아래로 잡아 당겨 훅 꺼지는 느낌을 받았다. 큰 바위에 깔린 듯 미동조차 할 수 없었다. 선교사는 이곳의 영(靈)이 자기와 다른 영을 가진 사람이 온 것을 시기하는 거라 말했다.
이튿날 아침 거리에 나가보니 신호등, 길바닥, 벤치, 전신주 등 별 의미 없어 보이는 시설 위에 제물들이 과하다 싶을 만큼 널려 있었다. 모시는 신의 종류도 다양했다. 거리의 사람보다 많아 보였다. 한국에서는 느껴본 적이 없는 가위눌림을 겪고, 과연 영혼은 존재하는가, 육체와 영혼은 다른 것인가, 그 존재가 물리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에 한동안 고민에 빠졌다.
영적 존재와 힘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을 고백하는 이유은 인도네시아 발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피가 혈관을 타고 흐르듯 믿음이 삶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는 곳, 발리 앞에는 늘 ‘신들의 섬’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발리는 산스크리트어로 제물을 뜻하는 ‘와리(Wari)’가 변형된 말이다. 이름부터 신성이 깃든 섬이다. 현지인들은 발리를 '천 개의 사원이 있는 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도네시아는 인구의 86%가 무슬림이다. 반면 발리는 410만 인구 중 93%가 힌두교를 믿는다. 외지인을 빼면 전부라 할 만큼 압도적인 힌두교 섬이다. 세계 최대의 이슬람국가에서 어떻게 발리에서만 힌두교가 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인도네시아에 힌두교가 전파된 것은 5세기이고, 15세기 마자파힛 왕조 때에 절정에 달한다. 그 무렵 수마트라에서 전파한 이슬람이 인도네시아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한다. 그 영향으로 마자파힛 왕조가 멸망하고, 힌두교 승려와 왕족들이 발리로 피신해 정치ㆍ경제적 주도권을 장악한다. 이후 발리의 토착 신앙과 융합한 힌두교는 인도와는 다른 '발리 힌두교'라는 독특한 종교로 발전한다.
종교가 발리인의 생활 속에 얼마나 깊이 깃들어 있는지는 차낭사리(Canang sari)를 보면 알 수 있다. 발리 사람들은 누런 코코넛 잎을 그릇처럼 접어 그 속에 꽃, 동전, 밥 등을 넣은 차낭사리를 향과 함께 얹어 신이 있다고 믿는 곳 어디나 놓아둔다. 이때 전통복장의 여성이 향을 놓고, 발리 전통 술(아락) 혹은 성수를 뿌린 후 꽃잎을 손가락에 끼고 차낭 위를 훑으며 짧은 기도를 한다. 차낭 가격은 고작 100~200원(1,000~2,000루피아)이지만 '신이 깃든 곳 어디나', 그리고 하루 3번 이상 공물을 바치기 때문에 그 시간을 합하면 결코 만만치 않다.
발리인의 신앙은 남녀노소 빈부격차를 막론하고 경외할 정도다. 아무리 가난해도 집에 사원이 있고, 일생에서 겪어야 할 모든 통과의례에서 힌두교의 예법(다르마)을 따른다. '우파차란'이라 부르는 각종 제사를 생업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출근하기 전에 연(鳶)을 날릴 정도로 삶의 매 순간을 신과 함께한다.
세계적인 관광지이고 호주와도 가까워 외부의 영향이 클 법도 하지만, 발리는 시간이 갈수록 전통문화에 대해 더 강한 애착을 보인다. 끊임없이 열리는 종교성 축제는 관광객보다 현지인을 위한 것이 대부분이고, 사원 수는 줄어들 줄 모른다. 마을마다 기본적으로 창조의 신, 보호의 신, 파괴의 신을 모시는 3개의 사원이 있는데, 발리 전체로 따지면 2만개가 넘는다. 집 자체가 사당인 경우도 많아 섬 전체가 사원인 셈이다.
발리에서 유독 힌두교가 강한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수박(Subak)’과 관련이 깊다고 추측된다. 발리는 화산섬이어서 물 관리가 쉽지 않아 넓은 평야가 없다. 게다가 건기와 우기가 뚜렷해 벼농사는 물과의 싸움이다. 2012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수박은 발리에서 논에 물을 대는 전통방식이자, 저수지에서 연결된 수로를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발리에서는 보통 샘을 가진 사원 주변에 논이 형성돼 있으며, 승려가 물을 분배하는 권한을 갖는다. 따라서 수박은 단순히 물을 대는 것뿐만 아니라, 마을과 전통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수박을 만들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통제력을 가진 공동체가 필수다. 이를 ‘반자르(Banjar)’라 부르는데 종교공동체, 노동공동체, 생활공동체의 의미를 지닌다. 반자르는 100가구(가족) 정도로 구성되고 큰 마을에는 2개 이상이 있다.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고 결혼하고 죽는 모든 과정에서 필요한 행사는 반자르를 통해 이루어진다. 반자르의 축복을 받으며 태어나 그 속에서 전통문화를 익히고, 결혼을 하고 장례를 치른다. 반자르에서 쫓겨나면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이슬람 세력에 자바섬을 빼앗긴 힌두왕조가 발리를 지배하면서 노동공동체인 반자르가 힌두교를 받아들이게 되고, 종교와 생활은 화학적 결합 과정을 거친다. 게다가 승려가 물의 분배권한을 가지면서 종교는 곧 생존과 직결된 문제가 된 것이다.
최근 아궁화산 폭발 위험으로 전 세계가 들썩였다. 지금은 화산활동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어 발리 재난당국에서 경보를 하향조정 한 상태다. 발리 사람들은 이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발리 힌두교의 세계관은 방향과 자연물의 특성에 따라 선악을 구분한다. 산을 신성시하고 물(바다)을 나쁜 것, 불길한 것으로 여긴다. 발리의 지형은 북서쪽은 산, 남동쪽은 바다다. ‘카쟈(산쪽)’와 ‘쿠롯도(바다쪽)’의 조합이다. 발리 사람들은 이 대비처럼 위와 아래, 우세와 열세, 깨끗함과 더러움 등 이분된 가치관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사원의 위치와 장례 장소, 집의 구조 등도 이에 따라 정해진다.
아궁산은 1808년 이후 수 차례 폭발한 활화산이다. 1963년 대폭발 때는 2,0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올해 10월, 우주의 중심이자 가장 신성한 존재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발리 사람들에게 이는 단순한 '재해'가 아니다. 만물에 신성이 깃들어 있음을 믿고, 반자르를 벗어나 살 수 없는 이들에게 아궁산의 움직임은 신의 목소리나 마찬가지다.
발리를 그저 화려하고 먹거리와 즐길거리 많은 여행 천국으로만 생각했던 나에게도 번민의 시간이 지나갔다. 인간의 의지와 노력을 무엇보다 우위에 놓았던 내가 태국에서의 가위눌림으로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 것처럼, 아궁산의 움직임은 또 한 번 보이지 않는 힘이 인간에게 내리는 메시지로 다가왔다. 나에게도 발리의 신성이 전염된 모양이다.
▦화산 위험 발리, 여행가도 괜찮을까요?
발리관광청은 10월 29일 인도네시아 화산지질재난방재센터(PVMBG)의 발표를 인용해 화산 위험경보 수준을 4단계에서 3단계로 하향했다고 밝혔다. 이는 ‘분화구 주변에만 가지 않으면 문제없음’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관광청은 또 “폭발의 징후인 지진현상이 20일부터 관측되지 않아 화산활동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며, 화산재가 없는 흰 구름이 서쪽방향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여행에 별다른 지장이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발리의 주요 관광지는 아궁산 동쪽과 남부지역에 집중돼 있다.
박재아 여행큐레이터 DaisyParkKorea@gmail.comㆍ사진 인도네시아관광청(VITO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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