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서 4년간 핵심 실세 역할
이헌수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이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국가정보원간 각종 ‘검은 유착’의 전모를 낱낱이 밝힐 ‘키 맨’으로 부각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내내 국정원 돈과 인사를 주무른 핵심 실세였던 그가 국정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사실을 털어놔 전례 없는 국정원 특수활동비 수사가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 실장은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인 2013년 4월 기조실장에 임명됐다. 그는 ‘국정원맨’이다. 1981년 국정원 공채로 입사해 기획예산관과 국정원장 비서실장 등을 거쳤다. 누가 그를 추천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임명 과정에서 이 전 실장 비위 의혹이 불거졌지만 청와대는 물러서지 않았다. 당시 그는 1999년 재직 중 동료들에게 친구 회사 주식을 사라고 권했다가 회사가 악재에 빠질 것이란 사실을 미리 알고 직원들의 투자금을 돌려받게 했다는 의혹에 시달렸다.
2014년 10월에는 사표 번복 소동도 있었다. 당시 국정원은 “정년(60세) 문제”라 했지만, 실상은 청와대 실세들간 ‘암투’ 탓이란 의혹이 불거졌다. 한 야당 의원은 “비선라인이 나이를 트집잡아 해임하려다 대통령이 화를 내 유임키로 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우여곡절을 겪은 이 전 실장은 국정원장과 차장이 물갈이 될 때마다 살아남아 이례적으로 4년여간 국정원 2인자 자리를 이어갔다. 그 사이 청와대와 국정원의 각종 불법행위에 깊숙이 개입해 피의자 신세로 전락했다. 이 전 실장은 특수활동비 뇌물사건 관여 혐의 외에 현대ㆍ기아차그룹을 압박해 특정 보수단체 쪽에 27억원의 일감을 몰아준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재직 중 얻은 정보를 친한 기업인에게 전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그는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에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정보를 전했다.
기조실장은 늘 뒤탈의 우려가 깔리는 자리다. 국정원 예산과 인사를 맡는 막강한 권한이 주어져 과거 여러 정부는 가장 믿을 만한 측근 인사를 심어왔었다. 이명박 정권 때는 형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과 가까운 김주성 전 실장이 임명됐다. 문재인 정부도 노무현 정부 때 쌓인 인연으로 법무부장관 후보까지 거론되던 신현수 변호사를 기조실장에 임명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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