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와 프로이트, 불온한 성적 긴장감을 부르는 이름. 그들에게 영감 받았다고 말하는 작가들의 그림도 위태롭고 축축할까.
세계 미술계의 영스타인 미국 작가 헤르난 바스(39)와 신예 정영도(32)의 2인전이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응축된 야수적 욕망을 현란하게 분출하는 작가라는 점이 연결 고리”라는 갤러리의 설명. 전시 제목도 ‘와일드 앤 아웃(Wild n Out)’이다. 바스가 5점, 정영도가 8점의 신작을 내놨다.
바스의 작품은 프랑스의 20세기 표현주의 작가 앙리 마티스의 ‘강가의 목욕하는 사람들’(1916)을 변주한 연작이다. “마티스 작품은 색과 구도는 단순하지만 이야기는 섬세하고 풍성하다. 그런 느낌을 담고 싶었다.” 수풀이 우거져 어두침침한 강이라는 공간은 그대로 두고, 인물은 알몸의 여성들에서 반라의 깡마른 소년들로 바꿨다. 소년들 사이엔 미세한 성적 떨림이 흐른다. “강가에서 목욕하는 여성의 나체는 미술의 오랜 소재다. 동성애 작가들은 목욕하는 남성을 억눌린 욕망을 풀어내는 소재로 삼으려 했지만, 금기였다. 그런 억압의 역사를 과감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왜 탐미주의의 현신인 오스카 와일드이고, 왜 나른한 표정의 소년들일까. “와일드는 동성애 코드를 암호화해 작품에 숨겨 뒀고, 그래서 좋아한다. 내 작품 속 소년들도 동성애자인지 아닌지 불분명하다. 소년들이 자라면서 성 정체성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는 순간들과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성장기를 담았다.” 소년들은 결국 바스의 모티프이자 자화상이다. 플로리다 마이애미 출신 쿠바계인 바스는 미술을 거의 독학했다.
정영도는 프로이트를 “아버지 같은 존재”라고 했다. 전시에 내놓은 연작 제목은 ‘플라스틱 프로이트’. 그의 아버지는 국내 프로이트 연구 권위자인 정도언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다. 작가가 프로이트적 작법으로 그린 것이 누군가의 꿈이라면, 화려하고 강렬하나 어쩐지 불길한 꿈이다. 화면에서 무엇이 제일 먼저 보이는지가 마음 상태를 보여준다는, 요즘 유행인 심리 테스트 그림을 닮았다. 그림 구석구석에 숨긴 복숭아, 훼손된 인체, 선인장 등이 욕망을 상징한다고 작가는 설명했다.
갤러리가 이질적인 두 작가를 묶었고, 작업은 따로 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작품에서 공통점을 발견했다. “바스의 작품엔 구상 속 추상이, 정영도의 작품엔 추상 속 구상이 교차한다”는 것. 작품 앞에 서면 작가가 붓질의 언어로 암호화해 숨겨둔 이야기를 캐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점도 같다. 전시는 이달 25일까지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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