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화폐개혁 실패가 ICBM 집착하게 만들어”
北주민에 대한 정보 유입 강조…1일 美의회에서 증언
지난해 한국으로 망명한 후 처음 미국을 방문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는 “북한은 파괴의 대상이 아닌 변화의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태 전 공사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워싱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주최로 ‘핵 외교를 넘어서, 정권 내부자가 본 북한’이란 주제로 열린 강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미국의 대북 전략인 ‘최대의 압박’을 지지하지만 ‘최대의 관여’가 병행돼야 한다며 “최대의 관여는 김정은 정권뿐 아니라 북한 주민을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태 전 공사는 북한의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북한 주민이 더 많은 남한 사회의 정보를 얻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북한 체제는 공포정치와 외부정보 차단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며 “우리가 공포정치를 바꿀 수는 없지만, 외부정보 유입 확산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 주민을 교육하면 북한을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태 전 공사는 “만약 동독 주민들이 수십 년 동안 서독 TV 방송을 보지 않았다면 독일 통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지금은 북한 주민이 남한 방송을 볼 수 있는 선진화된 기술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통제와 감시 속에서도 외부 정보를 습득하고 있는 북한의 상황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북한 아이들이 게임과 영화 등을 담은 SD카드를 ‘콧구멍 카드’라고 부른다면서 “몸 수색 때 이 카드를 콧구멍 안에 숨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태 전 공사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2013년 3월 핵·경제 병진 노선을 발표하면서 말미에 “다가오는 전쟁은 북한과 미국 간이 아니라 우리 내부의 사상과 의지에 대한 전쟁”이라고 발언한 후 대대적인 숙청이 이뤄졌다고 증언했다. 그해 8월 김정은 부인 리설주가 활동했던 은하수 관현악단 소속의 유명 가수 8명이 처음으로 처형됐고, 이어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 전 국방위 부위원장이 숙청됐다고 했다. 이런 숙청 작업은 김정은 리더십의 정통성 부족과도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정은은 집권 초기에 3남(男)이라 강한 정통성이 없어 간부들이 김정일을 대하는 것과는 달리 자신을 경시한다고 생각했다”며 “지난 5년간 북한 신문을 살펴보면 김정은은 자신이 유일한 백두혈통이라는 것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집권한 지 5년이 지났지만, 출생일시와 어머니에 대해 발언하지 않고 있으며, 어린 시절 할아버지인 김일성과 찍은 사진이 없어 보여주지도 못하고 있다”며 “많은 북한 주민은 그가 3남이라는 사실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은이 경제개혁보다 핵·미사일 능력 고양에 매달리게 된 계기로 2009년 화폐개혁 실패를 꼽았다. 김정은이 후계자로 임명돼 단행한 화폐개혁은 주민의 저항에 부닥쳐 한 달 만에 박남기 노동당 재정부장의 처형으로 막을 내렸다. 태 전 공사는 “북한이 공개적으로 정책 실패를 인정한 것은 화폐개혁이 처음”이라며 “김정은은 주민의 경제적인 생존을 위협하면 매우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화폐개혁 실패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집착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은이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 전 대통령 축출 등을 보면서 주권국가에 대한 군사 개입을 절대적으로 금지했던 과거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으며, 주민들이 아무리 작은 규모의 폭동이라도 일으켜 자신이 이를 무력으로 탄압할 경우 국제사회가 즉각 나설 것이라는 점을 알게되면서, 국제사회 개입을 막기 위해 ICBM 개발에 집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태 전 공사는 1일 미 연방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내부자가 바라보는 김정은 정권’을 주제로 공개 증언을 한다. 그의 첫 미국 방문은 에드 로이스(캘리포니아) 하원 외교위원장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그는 올해 초 방미하려 했지만 지난 2월 김정남 암살 사건이 발생하면서 미뤄졌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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