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 중인 조모(26)씨는 지난달 “국가공인 자격시험을 치른다”며 10월 말 사흘간 일정으로 소집됐던 예비군훈련 연기신청서를 냈다. 조씨가 이날 제출한 증빙서류는 국사편찬위원회 주최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수험표. 하지만 이는 훈련 연기만을 목적으로 한 응시였을 뿐, 수험표 사본을 제출하고는 정작 응시는 취소했다. 조씨는 1일 “하반기에 몰린 기업 입사시험 준비를 위한 궁여지책이었다”고 털어놨다.
취업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는 청년들이 예비군훈련을 미루기 위해 일부러 자격증시험을 신청하거나, 병원을 찾는 등 갖은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훈련 자체를 거부한다기보단, 기회비용을 따져가며 되도록 자신에게 유리한 시점에 훈련을 이행하겠단 움직임이다. 현행 예비군법은 훈련 연기사유로 ▦직계 존·비속 등의 위독 및 사망 ▦재감 ▦출국 ▦공무원 또는 공사단체 채용 시험 응시 ▦국가공인 민간자격시험 응시 ▦ 질병 또는 심신장애 등을 들고 있는데 조씨처럼 법이 허용하는 선에서 훈련을 미루는 이들이 갈수록 늘고 있는 추세다.
이들 역시 엄연한 병역의무인 예비군훈련을 고의로 미룬다는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모르는 건 아니다. 다만 “그래도 훈련보단 취업 준비가 우선될 수밖에 없다”는 항변. 기업 입사시험이 몰린 봄과 가을에 예비군훈련을 하는 경우 면접시험 일정과 겹쳐 곤란한 경우가 허다한데다, 아르바이트를 겸할 경우엔 사흘치 소득을 포기해야만 한다. 이러나 저러나 훈련은 미뤄두고 보든 게 상책이란 얘기다.
실제로 온라인 취업커뮤니티에선 ‘예비군 미루는 법’ ‘예비군 연기 가능 시험’등에 대한 문답이 활발하다. 이곳에서 일부 훈련연기 경험자들은 “피하지 못할 사정이 아니더라도 취업 전 예비군훈련은 최대한 연기하길 권장한다”는 조언도 남긴다. 대학생이나 대학원생의 경우 1년에 단 하루의 동원훈련(8시간)만 다녀오면 되고, 직장인의 경우 예비군훈련일이 유급휴일에 해당되기 때문에 학생이나 직장인 신분이 아닌 이들에겐 상대적으로 시간적·경제적 손해란 논리다. 지난해 평소 앓던 허리통증을 이유로 훈련을 미룬 적이 있다는 웹 디자이너 김모(29)씨는 “예비군 훈련을 치를 순 있을 정도의 통증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취업을 했으니) 기회비용 측면에선 결과적으로 괜찮은 선택이었다 생각한다”고 했다.
국방부는 “현행법상 취업시험 응시는 예비군훈련 연기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취업시험의 경우 ‘주요업무 수행’ 사유로 최대 세 차례 연기가 가능하다”고 설명했지만, 대다수 훈련 소집 대상자들은 “직장이나 단체장의 직인이 찍힌 연기 사유서를 요구한다”며 현실과 동떨어진 설명이라고 반박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구직과 생업에 짓눌려 돈 한 푼이 아쉬운 민간인 신분 청년들이 예비군 훈련에 무리하게 참가하는 부당한 현실을 이번 기회에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예비군 훈련보상비를 포함한 제도 개선을 위한 정부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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