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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칼럼] 늑대, 인간은 대체 불가한 포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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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칼럼] 늑대, 인간은 대체 불가한 포식자

입력
2017.11.0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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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에 대한 현대 한국 사회의 관점은 단순할 듯 싶습니다. 음흉한 남자에 대한 지칭 정도 아닐까요? 돼지 3형제나 양치기 소년 등 속담이나 동화에 나오는 늑대의 이미지는 전부 나쁘거나 악독한 동물로만 묘사됩니다. 제 기억에서 그나마 늑대에 대한 좋은 기억은 어니스트 시튼이 저술한 ‘늑대왕 로보’가 거의 유일했죠.

늑대는 주로 음흉하고 악독한 동물로 묘사된다. 출처 이윤수
늑대는 주로 음흉하고 악독한 동물로 묘사된다. 출처 이윤수

늑대, 넌 누구냐

하지만 늑대가 그렇게 나쁘기만 할까요? 늑대의 학명은 Canis lupus입니다. Canis의 뜻은 개, lupus는 늑대를 의미합니다. 지금이야 ‘늑대’로 대부분 통칭하지만, 사실 늑대의 어원은 여전히 아리송합니다.

한반도에 서식했던 갯과 동물은 늑대(이리), 승냥이, 여우와 너구리 정도입니다. 늑대의 한자어는 ‘랑(狼)’이라고 합니다. 1527년 한자 학습서인 훈몽자회와 1664년의 칠장사판천자문이라는 책에서는 ‘狼 일히(이리) 랑’이라는 언급이 있습니다. ‘이리’라는 단어가 ‘늑대’에 비해 먼저 그 출현을 알린 셈이죠.

‘늑대’라는 단어는 19세기 말 즈음 슬그머니 출현하기 시작합니다. 한편 ‘승냥이’(Cuon alpinus)라는 갯과 동물은 이제 동북아시아에서 찾기 어려운 동물이 되어버렸는데 이를 한자로 시(豺) 또는 붉은 이리(赤狼)라고도 했죠. ‘말승냥이’라는 단어도 있습니다만 크다는 뜻한 ‘말’이 붙어 만들어진 단어로 늑대를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간혹 한국의 늑대 아종이 따로 존재한다고 하고 늑대와 이리는 다르며, 말승냥이가 따로 있고 또 승냥이가 존재한다는 등 복잡한 말들을 섞어놓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한반도가 그리 넓은 땅은 아니기에 그렇게나 다채로운(?) 갯과 동물들이 서식했을 리는 만무하죠. 그러니 늑대(이리), 승냥이와 여우, 너구리 정도로 정리해두시면 되겠습니다.

늑대와 이리는 출현 시기에서 차이가 있을 뿐, 같은 말이다. 출처 이윤수
늑대와 이리는 출현 시기에서 차이가 있을 뿐, 같은 말이다. 출처 이윤수

늑대는 전 세계에 37아종이 존재할 만큼(아직도 논란 중입니다만) 지구의 북반구 전체에 걸쳐 분포하는 성공한 갯과 동물입니다. 우리나라에 분포한다고 알려진 아종은 C. l. chanco입니다. 개 또한 늑대의 한 아종이기에 자연스럽게 교배가 가능합니다. 현재 존재하는 늑대들과 개의 형태가 매우 다른 이유는 인간에 의한 품종개량이 극단화되었으며, 습성 상, 사람과 소통하는 능력이 늘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늑대는 인간과의 지속적 마찰로 인해 자연스레 인간을 멀리하며 그 본연의 습성이 그대로 남은 것이죠.

자연계에서 늑대는 인간과 호랑이를 제외하고서는 최상위 포식자라 해도 무방합니다. 크기야 30, 40㎏ 내외 정도지만, 북미에서는 북미들소까지 사냥할 수 있는 능력까지 있죠. 우리나라에서는 멸종 위기 야생동물 1급으로 지정 보호하고 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남한의 늑대는 1967년 경북 영주에서 마지막으로 포획되었으며, 1996년 서울동물원에서 죽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간과 호랑이를 제외하면, 들소도 사냥할 능력을 가진 늑대는 최상위 포식자이다. 출처 이윤수
인간과 호랑이를 제외하면, 들소도 사냥할 능력을 가진 늑대는 최상위 포식자이다. 출처 이윤수

호랑이 없는 곳에, 늑대가 번성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늑대 자연사는 어떠했을까요? 조선왕조실록 명종실록 2권 1545년 기록에 따르면 “대랑피(大狼皮)는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어서 비록 중국 사신이 청하더라도 다 들어 주지 못하고 있는데”라는 말이 나옵니다. 늑대가 흔하지 못했다는 의미지요. 생태사학자인 김동진 교수에 따르면17세기 초까지도 매년 전국에서 약 1,000여 마리의 호랑이와 표범이 사냥되었지만 18세기에 이르러 그 수가 급감되는 시기를 지나 18세기 중반부터 늑대의 출현이 현격하게 늘어납니다. 호랑이 서식지에는 늑대가 번성하기 어려운 것인지라, 호랑이가 없어지면서 이동성이 좋은 늑대가 만주지역에서 한반도로 유입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실제로 2011년 슬랍스(Slavc)라는 어린 수컷 늑대는 슬로베니아서 이탈리아에 이르는 2,000여 ㎞를 여행한 게 보고되기도 했죠. 이러한 늑대의 습성을 고려해본다면 한반도에 늑대는 호랑이의 위세에 눌려 있다가 기회가 오자 폭발적으로 번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로 인해서 늑대에 의한 사람들의 피해가 늘어난 것으로 보이는데, 1917년 총독부가 발행한 조선휘보의 보도에 따르면 1915년 113명, 1916년 54명이 사망했습니다. 늑대가 우리나라에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야생동물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슬로베니아에서 이탈리아까지 약 2,000㎞에 이르는 수컷 늑대 슬랍스(Slavc)의 여정. 출처 류블랴나 대학교 포토치니크 교수
슬로베니아에서 이탈리아까지 약 2,000㎞에 이르는 수컷 늑대 슬랍스(Slavc)의 여정. 출처 류블랴나 대학교 포토치니크 교수

늑대의 멸종과 복원 노력, 반면교사로 삼아야

늑대의 복원은 단순히 한 종을 되살리는 행위만은 아닐 겁니다. 오리건 주립대 교수인 윌리엄 리플이 2014년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세계 대형 육식동물의 생태학적 영향과 현 상태」에 따르면 늑대의 도입은 단순히 주요 먹이동물인 엘크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간접적 효과를 통해 동일 서식지의 동물종뿐만이 아니라 식생과 심지어 하천의 형태까지 변화를 일으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윌리엄 리플 외, 옐로 스톤 국립공원 내의 늑대 복원이 미친 직간접적 영향의 개념도, 세계 대형 육식동물의 생태학적 영향과 현 상태, 출처 사이언스
윌리엄 리플 외, 옐로 스톤 국립공원 내의 늑대 복원이 미친 직간접적 영향의 개념도, 세계 대형 육식동물의 생태학적 영향과 현 상태, 출처 사이언스

현재 세계적으로 알려진 바에 따르면 포식자들은 생물 다양성의 유지와 건강한 생태계 기능을 위한 필요조건이며, 이러한 기능은 인간이 대체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사라진 호랑이, 늑대를 다시 이 땅에 돌려놓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을 수도 있지만, 이를 반면교사 삼아 남아있는 다른 야생동물조차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병원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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