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의 주한미군 배치를 둘러싸고 파탄난 한중 관계를 봉합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박근혜 정부의 갑작스러운 사드 배치 결정에 사실상 뒷통수를 맞은 중국을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끝내 중국을 움직인 건 일관된 외교ㆍ안보 정책을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신뢰였다는 게 청와대의 자평이다.
31일 청와대에 따르면 한중 관계는 7월 독일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정상회담을 가지며 전환점을 맞았다. 양국 정상은 첫 대면인 이 자리에서 예정보다 30분을 훌쩍 넘긴 1시간 10분 동안 사드 문제 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했다. 특히 한중관계 개선을 위해 고위급 채널을 가동하는 데 합의하며 대화의 물꼬를 텄다.
대화 채널은 양국 정부의 ‘실력자’로 정해졌다. 최고 결정권을 가진 외교 책임자가 신속하게 정치적 타결을 이루자는 취지다. 중국 협상 대표로는 2014년 중일 영유권 분쟁 등 중국의 주요 협상을 담당한 쿵쉬안유(孔鉉佑)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급)가 나섰다. 한국에서는 문 대통령의 핵심 외교 참모인 남관표 국가안보실 2차장이 결정됐다. 남관표 2차장은 8월부터 수차례 중국을 오가며 한중 입장을 조율했다.
남관표 2차장은 “사드는 본래 배치 목적에 따라 제3국(중국)을 겨냥하지 않는다”, “중국의 전략적 안보이익을 해치지 않는다”고 중국을 설득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한국 정부의 유감 표명을 바란다는 말도 흘러 나왔지만, 우리 측은 “주권 행사에 유감을 표명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대화로 설득하는 데 집중했다.
이에 중국은 문재인 정부를 신뢰할 수 있다고 판단하며 입장 변화를 보였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 및 한반도 평화정책 기조에 중국 측의 기본적인 신뢰가 있었다”며 “한중 정상회담과 전화통화 등을 거치면서 믿을 만한 외교 파트너로 인식된 게 이번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최측근인 노영민 전 의원을 신임 주중대사로 임명한 점도 중국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한다.
한미 공조도 힘을 발휘했다. 미국도 중국에 ‘사드는 중국을 겨냥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전달하며 한국 정부에 힘을 보탰다. 김정숙 여사의 내조외교도 얼어붙은 한중 관계를 녹이는 데 기여했다. 김 여사는 지난 8월 한중 수교 25주년을 맞아 추궈홍(邱國洪) 주한 중국대사 부부와 미술관을 관람했고, 한달 뒤 다시 청와대에서 추 대사 부부를 접견했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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