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지구는 돈다.”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1633년 4월 종교재판소에 불려가 지동설을 주장한 이단 혐의로 유죄판결과 함께 무기한 가택연금형을 선고받은 후 법정을 나오면서 중얼거렸다는 말이다. 한해 전 출간한 ‘두 우주체계에 대한 대화’에서 교묘하게 지동설을 옹호했던 그는 화형 위기까지 갔으나 주장을 철회하고 우호적 추기경들의 호소 덕에 풀려났다. 그런 상황에서 갈릴레오가 과연 이런 말을 했는지는 의문이며 공식기록도 없다. 그의 심정을 상상한 한 후대 소설가의 창작이라는 얘기가 정설이다.
▦ 이 말이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살아났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고영주 이사장이 2013년 한 행사에서 당시 국회의원이던 문재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로 지목하며 “(그가) 대통령이 되면 한국이 적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주장한 게 도마에 올라서다. 명예훼손 소송이 진행 중인 이 발언에 대해 민주당 의원들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는 판결이 나오면 어떻게 할거냐”고 따지자, 고 이사장은 “갈릴레이는 혼자 지구가 돈다고 했다가 재판이 끝나고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대꾸하며 ‘닥치고 소신’을 이어갔다.
▦ 영화 ‘변호인’의 소재가 된 이른바 ‘부림사건의’ 수사검사였던 고 이사장은 극우적 공안 이력 때문에 취임 때부터 방문진을 이끌기엔 부적절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이번 국감에서 그는 “MBC가 공영방송 아니냐”는 질책에 “주식회사”라고 맞받아 MBC의 공적 책임 실현을 위해 설립된 방문진의 성격과 지위조차 모르는 무지를 드러냈다. 그는 또 증인 신분으로 출석한 그는 점심휴식 시간에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 드나드는 기행을 일삼고도, 신경민 위원장대리가 이를 문제삼자 삿대질과 고함을 주고받으며 ‘배째라 확신’을 과시했다.
▦ 이런 행태 덕분에 그는 지금 문재인 정부의 공영방송 탄압에 저항하는 우파 진영의 아이콘이 됐다. 한국당 김진태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와 삼각김밥을 함께 먹는 사진과 ‘힘내세요’라는 글을 올린 것은 한 예다. 궤변에 가까운 ‘갈릴레이 코스프레’도 여기서 나왔을 것이다. 그의 막무가내 성향을 간파한 민주당 이종걸 의원은 2년 전 “나치 정권에 괴벨스가 있었다면 박근혜 정권에는 ‘고벨스(고영주+괴벨스)’가 있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조치하라”고 요구했다. 이런 경고를 무시한 게 박 정권 몰락의 단초였을지도 모른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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