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식과 정지우 감독의 합작에 깜빡 속아 넘어갔다. 스릴러에 범인 찾기로 진행되는 영화 ‘침묵’은 관객의 편견을 이용해 극을 끌고 가다가 마지막 반전을 한방 먹이고 만다.
사랑하는 애인 유나(이하늬 분)가 죽고, 용의자로 하나뿐인 딸(이수경 분)이 몰리는 상황. 오만하기 짝이 없는 재력가이자 아버지인 임태산(최민식 분)은 딸을 구하기 위해 웬일인지 실력보다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변호사 최희정(박신혜 분)에게 변호를 맡긴다.
‘해피엔드’ ‘이끼’ ‘은교’ 등 파격적인 내용을 섬세한 감성으로 그려낸 바 있는 정지우 감독은 이번에도 역시 평범하지 않은 작품을 선보인다. 치정멜로로 보이던 ‘해피엔드’가 마지막엔 어떤 영화보다 더 끔찍한 스릴러로 끝맺음한 것처럼 ‘침묵’ 역시 멜로로 시작해 법정드라마, 스릴러, 부성애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든다.
일반적인 법정드라마라면 제대로 된 범인을 찾아내면서 나오는 통쾌함이 주된 카타르시스일 것이다. 하지만 ‘침묵’에서는 드라마의 한 요소로만 이용되며, 통쾌함보다 혼란스러움을 가져다준다. 영화는 누가 범인인지 찾는 과정으로 이뤄져 있지만, 범인이 누구인지 무엇이 가짜이고 무엇이 진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특히 박신혜가 맡은 변호사 캐릭터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지만, 그가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는 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건 진심이다. 아버지의 진심, 변호사의 진심, 딸의 진심에 대해 정지우 감독은 말하고자 한다.
용의자가 많은 상황에서 여러 가지 조건들은 자연스럽게 용의자들을 순서대로 지목한다. 임태산이 재력이 있는 자본주의적 인물이라는 점도 중요한 조건이다. 여기서 관객은 눈이 멀게 된다. 과연 임태산은 어떤 선택을 했던 것일까.
내용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예상되는 반전도 있지만 마지막 반전은 예상 밖이다. 이점은 최민식의 캐릭터를 풍부하게 만들고, 영화를 깊이 있게 만든다. 감독은 똑똑하게 관객뿐만 아니라 극중 인물마저 속인다. 극중 인물은 자신이 믿는 것에 끝까지 배팅하기 때문에 관객은 더 속을 수밖에 없다. 모든 사실이 밝혀지고 나서 관객은 당황스러움을 얻을 수도 있고 뜻밖의 감동을 받을 수도 있다. 어떤 감정을 느끼든 최근 한국영화의 뻔한 흐름에 흥미를 잃은 관객에게는 오랜만에 재미있는 영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마지막 반전이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또 유나에게 집착하는 동명(류준열 분)의 일부 설정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유나의 마지막 대사는 임태산의 입장에서만 생각한 억지 대사로도 보인다.
배우들의 연기는 말하자면 입 아프다. 연기력으로는 누구 하나 빼놓을 사람이 없다. ‘연기의 신’ 최민식은 조용하지만 꽉 찬 울림을 선사한다. 류준열과 이수경은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최민식과의 1대 1 대립 상황에서도 눌리지 않고 에너지를 터트린다. 최민식과 이하늬의 멜로는 쉽게 예상하기 어려운 조합이기에 눈길을 끈다. 최민식은 ‘해피엔드’ ‘파이란’ 이후 처음으로 멜로 감성에 도전했고, 이하늬는 대 선배인 최민식과의 멜로를 깊이 있게 소화했다. 또 엔딩크레딧에서는 ‘모던보이’의 김혜수가 그랬던 것처럼 극중 가수로 출연하는 이하늬의 한이 섞인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임태산 위주로 사건이 흘러가면서 여러 캐릭터들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캐릭터들이 소모적이지 않고 살아 숨 쉰다. 분량으로는 주조연이 나뉠 수 있겠지만, 어떤 캐릭터의 관점으로 영화를 보느냐에 따라서 또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내달 2일 개봉.
이주희 기자 lee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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