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드라마 '하우스오브카드',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로 유명한 배우 케빈 스페이시. EPA 연합뉴스

미국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시리즈의 주연배우이자 오스카상 수상자로 유명한 배우 케빈 스페이시가 느닷없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커밍아웃을 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한 남성 배우가 제기한 동성 성추행 혐의에 대해 입장을 밝히면서 나온 커밍아웃이어서 일부러 성추행 혐의를 비껴가려 했다는 비판이다.

지난 29일(현지시간) 배우 앤소니 랩은 미국의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14세이던 1986년에 스페이시의 초대를 받아 참석한 파티에서 그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스페이시는 몇 시간 뒤 페이스북과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30여 년 전 사건이어서 기억나지 않는다”며 “만약 랩의 주장대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술에 취해 적절하지 못한 행동을 한 것에 대해 사과하겠다”고 올렸다.

스페이시는 이 사과문을 통해 커밍아웃을 함께 했다. 그는 “이 이야기는 삶의 다른 부분을 털어놓을 용기를 줬다”며 “그동안 남녀 모두와 관계를 가졌다. 앞으로 남성 동성애자(게이)로 살겠다”고 고백했다.

배우 케빈 스페이시는 30일 인스타그램에 동성애자로 살겠다고 커밍아웃했다. 인스타그램 캡쳐

그러나 스페이시의 커밍아웃은 오히려 각계의 거센 비판을 불러 일으켰다. 성추행 혐의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커밍아웃으로 반전시키려는 교묘한 전략이 아니냐는 비판이다. 마치 그가 출연한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의 반전처럼 미성년자 성추행이라는 범죄행위를 유명배우의 커밍아웃이라는 흥미거리로 뒤집으려 한다는 지적이다.

“아동성추행 혐의에 대한 추궁으로부터 관심 돌리려는 계산된 조작”비판

할리우드의 성소수자 배우들도 비판에 가세했다. 그들이 비판에 나선 것은 스페이시의 커밍아웃이 게이들을 소아 성애자로 보게 만들 수 있고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정당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TV시리즈 ‘스타트렉’에 출연한 동성애자 배우인 조지 타케이는 20일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안소니 랩은 수십년전 기억을 갖고 지금까지 살아왔으나 나이가 많고 더 많은 권력을 지닌 케빈 스페이시는 정작 이 사건을 기억하지 못한다”며 “누군가를 부당하게 괴롭히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은 동성애자나 이성애자여서 그런 것이 아니라 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영화 ‘스타트렉 더 비기닝’에 출연한 또다른 동성애자 배우 재커리 퀸토도 트위터에서 스페이시를 비판했다. 그는 “스페이시가 커밍아웃을 위해 이런 방법을 택한 것에 대해 매우 슬프다”라며 “미성년자 성추행에 대한 추궁에서 관심을 돌리려는 계산된 조작”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스페이시가 오랜 세월 정체성을 부정하고 이익이 될 상황에서만 진실을 인정하려는 것이 유감”이라며 “앤서니 랩의 목소리가 더 강조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일각에서는 성소수자 혐오론자들이 앞으로 스페이시의 커밍아웃을 성소수자가 아이들에게 위협이 된다는 논리로 악용할까봐 우려했다. 영국 가디언의 칼럼니스트 오웬 존슨은 30일 칼럼에서 “러시아의 유명 동성애 혐오 단체는 아이들을 동성애자로부터 보호한다는 의미를 담아 ‘오큐파이 페도필리아’(Occupy Paedophiliaㆍ소아성애자를 점령하라는 뜻)라고 지칭한다”며 “우크라이나의 게이반대단체 ‘화이트 라이온스’도 게이들을 소아성애자라며 이들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한다”고 썼다. 그는 “앞으로 몇개월간 동성애 혐오론자들은 성소수자들이 아이들을 위협한다는 악의적 거짓말의 근거로 스페이시의 커밍아웃 사례를 활용할 것”이라며 “성소수자에 대한 억압과 정신적, 육체적 학대를 정당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