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징금 부과 아닌 차등과세 대상”
금융위, 과세당국에 공 떠넘기기
“비실명자산 아니라고 했으면서…”
국세청, 말바꾸기에 억울함 토로
삼성 측 “낼 것 있으면 내겠다”
4조4,000억원에 달하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차명계좌 실명 전환 과정에서 적절한 과세가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해 금융ㆍ과세 당국이 ‘핑퐁’ 공방을 벌이고 있다. 양 기관이 이 회장에 대한 적법한 조치에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다 문제가 불거지자 서로 책임을 떠 넘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30일 보도참고자료를 통해 “삼성 특검에서 밝혀진 계좌는 과징금 부과 대상은 아니지만 (금융실명거래법 위반에 따른) 차등과세 대상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 회장 차명계좌에 대해 과징금 처분을 하지 않은 금융위 조치는 문제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 뒤 차등과세를 하지 않은 과세당국 쪽에 책임을 슬쩍 떠민 것으로 읽히는 해명이다.
금융위가 과징금을 매길 수 없다는 근거로 든 것은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금융실명법)의 부칙 제5조와 제6조다. 금융위는 “이 규정에 따라 금융실명제 시행(1993년 8월 12일 김영삼 대통령의 긴급명령) 이후 개설된 금융자산에 대해서는 실명전환 의무도 없고, 따라서 과징금 징수 규정도 없다”고 강조했다. 삼성 특검 관련 계좌 대부분은 금융실명제 시행 이후 개설됐다.
금융위는 그러나 과징금을 부과할 순 없지만 차등과세 대상은 된다고 강조했다. 금융실명법 제5조에 따르면 비실명자산소득에 대해서는 세율 90%의 차등과세가 적용되는데, 이 회장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과세당국에서 이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해 차등과세에 대한 유권해석을 요청해 온 적이 없다”며 공을 국세청에 넘겼다.
갑자기 책임을 더 안게 된 국세청은 금융위의 말바꾸기가 당황스럽다는 입장이다. 금융위의 유권해석을 따랐을 뿐이라는 게 과세당국 설명이다. 과세당국 관계자는 “과세를 하려면 일단 가장 먼저 해당 계좌가 ‘비실명자산’이라는 점이 명확해야 하는데 이건 금융위 등의 유권해석 사항이다”며 “우리가 유권해석을 의뢰했을 때 금융위가 2008년 예규를 통해 비실명자산이 아니라고 해 놓고 이제 와서 말을 바꾸니 당황스럽다”고 토로했다. 그는 “금융위가 비실명자산이 아니라고 못을 박았기 때문에 우리 입장에서는 과세할 수가 없었던 것”이라고 억울해 했다.
삼성은 차명계좌 논란이 거세지자 내부적으로 곤혹스러워 하면서도 “낼 것이 있으면 내겠다”는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최순실 사건에 연루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이 진행 중이어서 더욱 조심스런 분위기다. 삼성 관계자는 “이번 건에 대해 공식 입장은 없다”고 밝혔지만 재계에서는 “정부가 과세를 하겠다면 따를 수 밖에 도리가 없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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