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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1년] “경제 불평등 해소 못하면 촛불혁명은 미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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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1년] “경제 불평등 해소 못하면 촛불혁명은 미완”

입력
2017.10.31 04:4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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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요구’ 제도로 승화해야

개헌정국서 논의될 정치개혁이 핵심

정당 지지율 반영 정당명부비례대표

선거연령 확대 등 선거제도 바꿔야

-87년체제 넘어 새 공화국으로

경제적 불평등 해소가 최대 관건

혁신, 통합 이중적 목표 달성 위해

촛불혁명 의미 지속적 성찰 필요

24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 손호철 교수 연구실에서 진행된 '촛불 1주년 기획 대담'에서 손호철(왼쪽) 서강대 교수와 김호기 연세대 교수가 촛불의 의미를 완성하기 위한, 정치개혁과 불평등 해소 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24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 손호철 교수 연구실에서 진행된 '촛불 1주년 기획 대담'에서 손호철(왼쪽) 서강대 교수와 김호기 연세대 교수가 촛불의 의미를 완성하기 위한, 정치개혁과 불평등 해소 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지난 겨울 광장을 뜨겁게 달군 천만 촛불을 우리는 ‘성공한 혁명’이라 부를 수 있을까. 촛불 이후의 대한민국은 그 열기에 걸맞게 획기적으로 변화했는가. 촛불 시민들의 바람 중 해소한 요구는 무엇이고 남겨진 과제는 무엇일까.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이사,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원장 등을 지낸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참여정부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을 지낸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에게 촛불의 완성을 위한 과제를 물었다.

24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에서 2시간 가까이 진행된 대담에서 두 학자는 “1년 전 촛불은 일대 정치적ㆍ역사적 사건이었지만 낡은 질서의 극복, 정치개혁, 불평등 해소 등 촛불 시민들의 주요 요구에 대한 응답이 다 이뤄지지 못한 만큼 미완의 혁명”이라고 입을 모았다. 민의를 실질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정치개혁을 추진하고, 이로써 ‘흙수저 세습제’가 해결될 때 비로소 촛불은 ‘완성된 혁명’이 될 것이라고 이들은 진단했다.

-먼저 촛불집회의 동력, 의의, 정신을 평가해 달라.

김호기 교수(이하 김)= “촛불시민혁명은 4ㆍ19혁명, 6월 항쟁에 비견할 만한, 우리 정치의 질서와 구조를 바꾼 역사적 사건이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리셋(reset)하고 리빌딩(rebuilding)하자는 시대가치의 발현이다. 2016년은 산업화 30년, 민주화 30년에 가까운 해였다. 나름의 성취에도 불구하고 한계가 많았던 낡은 대한민국을 청산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재건하려는 국민의 열망이 촛불혁명의 중심에 있었다.

과거 4ㆍ19혁명의 결과로 제2공화국이 등장했지만 이듬해 5ㆍ16 쿠데타로 군사정부가 출범했고, 6월 항쟁의 결과도 군부 권위주의적 노태우 정부였다. 이번 촛불혁명은 문재인 정부라는 진보적 성향의 정부를 그 결과로 가져왔다.”

손호철 교수(이하 손)= “촛불의 동력은 상식에 어긋난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분노다. 정부수립 70년이 박정희 체제로 표현되는 시간이었다면, 87년 체제의 30년은 불완전한 민주화의 시기였고, 외환위기(IMF)로 만들어진 97년 체제는 불평등의 20년이다. 이 세 체제의 모순들이 응집돼 터져 나온 셈이다. 특히 97년 체제의 헬조선의 분노가 촛불의 바탕이 됐다고 할 수 있다.

정치사적 의미를 평가한다면, 6월 항쟁은 직선제 개헌에는 성공했지만 민주정부 수립에는 실패한 반쪽짜리인 반면 이번엔 탄핵에도 성공하고 정권교체, 민주정부 수립에도 성공했다.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쪽에서는 ‘한국 현대사 최초의 완성된 혁명’이라고 표현했는데, 아직은 과대평가다. 항쟁이라면 정권교체로 끝나는 것이겠으나 만일 혁명으로 본다면 앞으로 해야 할 근본적인 사회ㆍ정치적 변화가 남아있다. 퇴진행동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적폐청산 과제 중 이뤄지지 않은 것들이 많다. 즉 미완의 혁명, 현재 진행형인 혁명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87년 6월 항쟁은 단기적으로는 정권교체에 실패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엄청난 의미를 갖는다. 촛불은, 단기적으론 많은 것을 얻은 것처럼 보이지만 중장기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가, 즉 정치사적으로 어떤 사건으로 기록될 것인가는 열려 있는 문제다. 사실 나는 87년보다 그 의미가 훨씬 적을 것으로 본다. 민주화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정도의 것, 시대가 완전히 바뀌는 정도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과연 새로운 분기점을 그을 만큼 우리 사회가 획기적인 변화를 얼마나 이끌어 낼 수 있을까?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 사회의 획기적 변화를 향한 국민 열망은 컸고, 그 표출수준도 높았는데.

김= “민주주의의 제도적 측면과 운동적 측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에서는 ‘운동으로서의 민주주의’가 늘 큰 역할을 해왔다. 4ㆍ19혁명, 광주항쟁, 6월 항쟁, 촛불시민혁명 등을 봐도 그렇다. 프랑스 민주주의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프랑스 대혁명, 7월 혁명, 2월 혁명처럼, 우리 국민에게도 운동으로서의 민주주의가 내면화돼 있다. 앞선 역사적 경험과 기억은 나중의 사회운동의 동력을 이룬다. 87년 6월 항쟁이 가능했던 것도 유신 독재 아래에서 반유신 운동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민주화 시대 이후에도 중요한 원동력 중 하나가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이다. 이런 경험과 기억이 켜켜이 쌓여 대통령 탄핵, 대한민국의 리셋과 리빌딩을 요구하는 촛불시민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나. 바로 여기에서 촛불시민혁명 정치의식화의 기원을 찾을 수 있지 않나 싶다. 이는 세계사적으로 자랑할만한 것이다.”

손= “‘운동 사회’라는 개념에 적합한 사회가 우리나라일 정도로 운동이 활발한 것은 맞다. 민주화 운동을 통해 한국의 시민의식이 발전해 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한국 시민의식의 이중성을 본다. 촛불이 처음이 아니다. 효순, 미선양 사건이나 고(故) 노무현 대통령 탄핵반대 때도 촛불이 있었지만 그런 정치가 주체화되지 못했다.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온 그 많은 시민들이 투표장에서는 지역적으로 찍는 모순도 발견됐다. 거리의 운동은 일회성이다. 올해 대선에서는 촛불 지지자들의 표가 75%, 반대자가 25%로 나타나긴 했지만, 앞으로는 또 어떨지 모른다. 시민이 거리로 나오는 것과, 촛불 이후 정치의식이 성숙해지고 주체화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시민의 성숙과 정치 주체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즉 광장에서 표출된 요구를 어떻게 제도로 승화해야 하나.

김= “정치적 주체화는 대의 민주주의와 참여 민주주의를 생산적으로 결합할 때 가능하다. 즉 참여 민주주의를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이번 촛불이 그런 주체화 과정을 거치고 있는지는 지켜봐야 한다. 최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실험이 있었다. 운동으로 표출된 시민의 열망이 민주주의 제도 안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공론화위, 다양한 거버넌스 등 참여 민주주의 제도들이 뿌리내려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대의민주주의와 긴장ㆍ마찰을 일으킬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둘을 어떻게 공존시키고 결합할 수 있는지를 지켜봐야 한다.”

손= “참여 민주주의 차원의 문제만은 아니다. 거리에서, 제도 정치에서 각각 시민들이 보인 행태가 괴리가 큰 점부터 문제다. 광장으로 확 나왔다가 다시 각자의 밀실로 돌아가 버리는 모습, 즉 밀실과 광장을 왕복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까. 중간의 정치적 매개가 취약하다는 점이 심각하다.

촛불에 다양한 세력이 모였기에 더 그렇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에는 ‘정치제도 개혁’ 등을 요구할 동력을 잃어버렸다. 탄핵 이후 정치권이 다 구태로 돌아갔는데 촛불이 전혀 압박하지 못했다. 정치가 다시 여의도의 독점, 그들만의 리그로 돌아가고 촛불시민은 구경꾼이 되지 않았나. 투표하는 날만 주인이고 그 다음에는 노예가 되는 상황, 즉 구경꾼 정치로 돌아간 측면이 있다. 광장에 확 나왔다가, 다시 구경꾼이 되는 극과 극의 상황을 바꿔나가는 것이 과제다.”

김= “촛불의 요구는 크게 세 가지 즉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경제민주화 ▦낡은 질서를 거부하고 해체하는 적폐청산 ▦정치개혁이었다. 그런데 탄핵 이후에는 이런 이슈들이 조기대선이라는 정치적 격랑 속에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경제민주화, 적폐청산의 두 과제는 조기 대선 결과로 등장한 문재인 정부의 과제로 넘겨졌고, 정치개혁은 곧 열리게 될 개헌정국에서 핵심적 화두가 되리라고 본다. 지금까지 탄핵, 조기 대선, 새 정부 출범, 북핵 위기 등 숨가쁘게 달려왔는데, 올 가을부터 내년 봄까지 논의될 개헌이 중요하다. 국회와 정부에서 구체적 안을 만들고 광범위한 토론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손= “문제는 정치개혁이야말로 가장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정치개혁도 국회를 통해 해야 하는데 이미 보여주고 있듯, 지금의 국회는 촛불 이전의 힘의 관계에 기초한 형태다. 촛불로 나타난 국민적 민의를 반영하기에는 비관적이다. 지금의 국회에만 맡겨 놓을 때, 촛불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여야간 힘의 관계 속에서 제대로 된 촛불의 민심을 반영한 헌법과 정치제도가 나올 수 있을지 우려가 된다.”

손호철 교수는 "시민들이 광장과 밀실을 극단적으로 왕복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정치체계에 일상에서 의견을 개진할 중간수준의 정치적 매개가 부족하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류효진 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손호철 교수는 "시민들이 광장과 밀실을 극단적으로 왕복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정치체계에 일상에서 의견을 개진할 중간수준의 정치적 매개가 부족하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류효진 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개헌과 정치개혁 논의에 꼭 담겨야 할 방향, 정신을 꼽는다면.

김= “분명하게 수렴된 요구들이 몇 가지 있다. 87년 체제의 한계로 지적되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제대로 구현할 방안, 지방분권, 선거 및 정치제도 등의 일련의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요구한 국민들이 두 눈을 뜨고 지켜보고 있는데, 국회가 아무리 자기 이익을 추구한다 하더라도 이 시선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손= “사실 국회에 ‘타살 당하지 않으려면 자살하라’는 식의 요구를 하는 것인데, 쉽지 않다. 물론 개헌은 필요하다. 정부형태 변화뿐 아니라 국민 기본권 향상의 측면에서도 절실하다. 그런데, 만약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 둘 중 하나만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개헌은 안 하더라도 선거제도의 개혁을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실패한 대의제를 반드시 고쳐야 한다. 사실 촛불이 그렇게 뜨거웠고 여러 단체가 요구했는데도, 정치권은 선거연령 하향에 반대했고 결선투표제 도입이나 비례대표제 확대에 대해서는 더불어민주당도 별 생각이 없었다. 지난해 오히려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표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합의해 비례대표를 축소하지 않았나.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고 제대로 할거라는 생각은 너무 순진하다.”

김= “국민들이 압박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시민과 언론이 함께 나서야 한다.”

김호기 교수는 "무엇보다 선거제도 개혁이 정말 중요하다"며 "대통령 결선투표제, 선거연령 하향, 투표시간 연장 등을 제도화 하는 등 국민의 민의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각종 선거법을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류효진 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김호기 교수는 "무엇보다 선거제도 개혁이 정말 중요하다"며 "대통령 결선투표제, 선거연령 하향, 투표시간 연장 등을 제도화 하는 등 국민의 민의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각종 선거법을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류효진 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실패한 대의제를 개혁하기 위한 과제를 구체적으로 꼽아보자.

김= “먼저 새 헌법에 지방분권 강화, 대통령 결선투표제 규정을 신설하며, 나아가 선거연령을 18세로 낮추고 투표시간을 오후 8시까지 연장하는 것 등 국민의 참정권이 확대되도록 공직선거법 개정이 필요하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손=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지방과 도시, 즉 선거구별 인구편차가 3 대 1 이상으로 나는 것은 위헌으로 판결했다. 현 제도에서는 거대정당을 지지하는 1표가 사실상 4표로 반영되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정의당은 전체 유권자 10%의 지지를 받고도 전체 의석은 2~2.5%를 차지하는데, 새누리당은 유권자로부터 30%의 지지를 받고도 의석의 35~40%를 차지한다. 사실상 표의 등가성이 너무 차이가 나기 때문에, 다양한 소수자의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되려면, 또 실질적으로 유권자들의 투표 결과와 의석이 일치하려면,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김= “국회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 의원이 지역구 의원의 2분의 1 이상은 돼야 한다. 국민들의 정치적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려면 그 대표성이 최대한 실현되는 기본 제도 설계가 잘 이뤄져야 한다.”

손= “질 나쁜 대의 민주주의를 어떻게 질 좋은 대의 민주주의로 업그레이드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핵심이다. 현대에 직접 민주주의는 보조적인 것이지, 직접 민주주의로 다 해결할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작 정치권에서 논의가 지지부진하고, 국민 여론도 온도 차이가 있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는 시민 참여, 직접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듯 보인다.

손= “그래서 언론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정치학자와 시민사회단체 하다못해 선거관리위원회까지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데 언론과 대중은 전혀 뜨겁지 않다. 일단 국민이 우호적이지 않다. ‘내가 뽑아야 하는데…’라는 생각인 거다. 비례대표를 확대하면서 후보 선정 방식을 투명화하고 경선을 의무화하는 등의 보완 조치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국민들은 관심이 없다. 언론도 이것이 왜 중요한지를 알리는데 소극적이다.

국회의원 수도 마찬가지다. 포퓰리즘적으로 의원 수를 줄이자는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국의 인구, 국민총생산(GNP) 수준 등을 감안하면 지금 정원은 너무 적고 의원이 380명 수준은 돼야 제 기능을 한다는 것이 정치학적 연구 결과다. 현재 정치권의 힘의 구도상 선거제도의 개혁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하다못해 ‘의원수 증원’이라는 당근을 제시해서라도 비례대표를 늘려야 하지 않을까 한다.

국회에 문제가 많다는 것 즉 우리 대의제가 고장 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나 동의하지만, 어떻게 고쳐야 하는가에 대해서 전문가ㆍ시민사회단체와 대중 사이에 괴리가 크다는 것이 진짜 심각한 문제다.”

김= “내년 지방선거까지 가는 정치일정이 대단히 중요하다.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의 기본적 과제는 결국 촛불시민혁명으로 상징되는 참여 민주주의와 국민들로부터 상당한 불신을 받는 대의 민주주의를 어떻게 개선해서 결합시킬 것인가이다.

물론 참여 민주주의와 대의 민주주의의 생산적 결합이 쉬운 과제는 아니다. 최종 의사결정 권한을 위임받은 조직이 정부와 국회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국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매우 크다는 것이 우리 정치 상황이다. 그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와 같은 숙의 민주주의 제도다. 문제는, 이러한 공론화위가 참여 민주주의의 발전이자 성취일 수 있지만 정부가 의사결정의 어디까지 맡기고 어디까지 수용할지에 대한 숙의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이다. ‘숙의 민주주의에 대한 숙의’가 새로운 과제로 등장한 셈이다.”

손= “공론화위는 중요한 실험이었다. 그러나 과연 제도를 갖춰 참여 민주주의나 숙의 민주주의 기구에 이런 의사결정을 맡기는 나라가 있는지 모르겠다. 숙의 기구에 관련 정보를 준 다음 투표 결과와 맞춰보는 수준의 연구가 있을 뿐이다. 의사결정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충분한 논쟁을 거쳐야 할 문제다. 국민에 직접 묻는 것과 대의 사이의 현명한 경계를 고민해야 한다.”

두 학자는 "공론화위원회 등으로 상징되는 참여 민주주의, 숙의 민주주의 제도가 대의 민주주주의를 어떻게 보완하게 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토론과 숙고가 우선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류효진 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두 학자는 "공론화위원회 등으로 상징되는 참여 민주주의, 숙의 민주주의 제도가 대의 민주주주의를 어떻게 보완하게 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토론과 숙고가 우선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류효진 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개헌은 내년 지방선거를 기준으로 봐도 논의 일정이 촉박해 보이는데.

김= “가장 우려되는 것은 ‘권력구조 개편’에만 초점을 맞춘, 원포인트 개헌으로 논의가 축소될지 모른다는 점이다. 논의가 복잡하고 정당 간 이해관계가 다른 상황에서, 기본권 향상이나 지방분권의 문제까지도 가지 못하고 ‘5년 단임제’라는 정부 형태에 대한 국민투표만 회부되고 다른 정치개혁 사안 논의가 다 사라질 가능성, 즉 원포인트 개헌만 논의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언론으로 대표되는 시민사회가 국회를 향해 정치개혁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주장해야 한다.”

손= “여기서 또 중요한 것이 정부의 태도다. 조기 대선을 치르며 촛불혁명의 과제들이 결국 문재인 정부에 넘겨져 있는 상황인데, 대국민정치는 A 학점을 주고 싶지만 대야당정치나 여의도정치는 C 학점이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 사태가 대표적이다.

촛불은 다양한 정치세력의 연정 위에서 가능했다. 이제는 정권이 여의도에서 개헌과 정치 개혁에 찬성하는 다수 연합(majority coalition), 연정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게 하루 아침에 되지는 않는다. 최소한 촛불을 지지했던 정의당, 국민의당, 바른정당을 아우르는 개혁적 개헌의 연정을 형성했어야 했다. 단순하게 여론만 가지고 압박할 문제가 아닌데 지금까지의 정치과정 속에서 그런 연정을 만들지 못한 게 애석하다. 지금이라도 연정을 형성하지 않으면 결국은 정치권의 권력게임에 말려서 개헌과 정치개혁의 가능성은 증발해버리고 말 것이다.”

김= “국민과 직접 소통도 중요하지만 정권이 국민 다수의 요구를 제도화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의석 수가 필요하다. 그런 대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복지동맹, 분배동맹 등을 모색하는 동시에 고도의 정치력으로 사안을 풀어나가야 한다. 정부라고 하는 것이 행정의 주체이자 정치의 주체임을 명심해야 한다.”

손= “불행히도 현실은 둘 다 못한다. 말은 협치라고 하는데 실제 권력을 나눠야 협치가 되지, 불러다가 밥만 먹는다고 협치가 되겠나. 다당제와 여소야대를 풀어나갈 준비가 안 돼 있다. 승자독식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국회를 건너 뛰고, 법을 통과하지 않고 대통령 시행령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하는 시행령주의로 가고 있다. 이래선 안 된다. 내년 지방선거에 이겨봐야 의회에서 힘의 관계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2020년까지는 이 구조로 가야 하는데, 협치하지 않으면 개혁을 할 수 있는 시기의 절반은 지나가 버린다.”

-시민사회도 촛불 정국에서 하나됐던 모습과 달리 급속히 계층, 성별, 지지정당에 따라 갈라졌다. 대타협의 길이 있을까.

손= “사실 대중이 언제 분노하고 언제 침묵하는가에 대해선 항상 무기력함을 느낀다. 꼭 그렇게 촛불을 들고 일어서지 않아도 국민이 정치에 일상적인 참여, 감시를 할 수 있도록 경기규칙을 정하는 일이 중요하다.”

김= “사회운동 참여는 많은데 자발적 결사체랄 수 있는 시민단체 활동은 다른 나라에 비해 낮다. 평소 자발적 결사체나 시민단체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나라일수록 시민사회가 튼튼하다. 다양한 형태의 민주시민 교육도 함께 이뤄져야 단단해진다.”

-촛불혁명 완성을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면.

손= “당연히 불평등의 해소다. 정유라의 표현대로 ‘돈 많은 부모를 만나는 것도 실력’인 헬조선을 넘어서는 새로운 공화국의 실현이다. 촛불이 분노했던 헬조선, 흙수저 세습제가 해결돼야 박정희 체제, 87년 체제, 97년 체제를 끝내고 촛불혁명 이후 2017년 체제로 갈 수 있다. 지금 소득주도 성장론 등이 거론되지만 너무 온건하고 방향전환도 부족하다. 탈-헬조선에 실패한다면 다시 제2의 박정희 신드롬이 일어날 위험도 있다. 최고의 적폐청산은 정치를 잘하는 것, 민생을 잘하는 것이다. 다시는 무능한, 반민주 세력이 권력을 잡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김= “소득주도 성장에 대해선 긍정적 평가를 하고 싶다. 최저임금 인상,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대기업 갑질 개혁 등이 추진돼 왔고 추진되고 있다. 국민 다수가 동의한다면 적절한 시기에 초대기업 초고소득자에 대한 법인세 소득세를 높이겠다는 잠정적 합의도 있다. 결국은 이를 통해 불평등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가 최대 관건이다. 그 성취가 없다면 국정운영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문재인 정부는 촛불시민혁명이 탄생시킨 정부이니만큼 촛불시민혁명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성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촛불시민혁명의 구조적 배경을 이룬 것은 저성장과 불평등의 제도, 불안과 분노의 문화였다. 산업화 시대 30년에 이어 민주화 시대 30년이 되는 역사적 시점이다. 저성장, 불평등, 불안, 분노를 넘어서려면 ‘혁신과 통합’이라는 이중적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혁신과 통합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의 초석을 놓은 것이 촛불시민혁명의 정신일 것이다.”

손= “현대사를 돌아보면 4ㆍ19는 미완이지만 혁명으로 기록된다. 이승만을 쫓아내서가 아니라, 이후 보다 근본적인 사회경제적 변화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촛불은 항쟁과 혁명의 중간쯤 있는 상태다. 대통령을 탄핵하고 적폐청산이 시작됐지만, 정치개혁과 불평등 해소 등 근본적 구조개혁의 요구는 과제로 남아 있다. 첫 두 단추는 성공했지만 앞으로 여러 정부를 통해 촛불의 정신이 실현되고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그게 없이는 ‘열심히 외쳐도 변한 게 뭐냐’며 국민들이 다시 냉소적으로 변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 모두는 마음 속의 촛불을 끄지 않은 채 늘 감시하고 참여해야만 한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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