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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 아이 보듬은 여검사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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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 아이 보듬은 여검사의 손편지

입력
2017.10.30 20:0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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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부ㆍ계모ㆍ형의 폭력 두려워

가출해 거리 헤매던 10세 소년

“널 따뜻히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편지와 선물 보내고 적금 들어줘

아이는 “꼭 뵙고 싶다” 감사의 답장

‘사법의 치유 기능’ 주변 훈훈

최근 수사와 기소를 넘어 가해자나 피해자에게 상담과 조언을 해주고 상처를 아물게 해주는 게 사법(司法)의 ‘치유적 기능’이 주목 받는 가운데 자신이 조사하던 학대 사건 피해 아동의 마음을 다독이고 사비(私費)를 들여 후원하는 검사가 있어 주변을 훈훈하게 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수사와 기소를 넘어 가해자나 피해자에게 상담과 조언을 해주고 상처를 아물게 해주는 게 사법(司法)의 ‘치유적 기능’이 주목 받는 가운데 자신이 조사하던 학대 사건 피해 아동의 마음을 다독이고 사비(私費)를 들여 후원하는 검사가 있어 주변을 훈훈하게 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힘들어도 너를 따뜻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단다.”

최나영(44) 대구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 검사는 지난 8월 한 아동학대 피해 어린이에게 이렇게 적은 손편지와 함께 축구공, 축구화, 운동복을 선물했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가정 환경으로 인해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고 있는 아이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지원(10ㆍ가명ㆍ남)이는 올 3월 집을 나선 뒤 5일간 동네 공원 등을 전전하며 꽃샘추위에 떨고 수돗물로 배고픔을 달랬다. 그러나 가족은 실종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지원이는 친부와 계모, 형에게 손찌검을 당할까 두려워 가출한 뒤 거리를 헤매는 숱한 아동학대 사건의 한 피해자다. 이 사건을 맡게 된 최 검사는 아이가 감당할 수 없는 ‘정서적 방임’을 마주하고 마음이 아팠다. “지원이는 항상 상처가 난 채로 등교했다고 해요. 지원이는 ‘형이 때렸다’고 했지만, 가족들은 ‘지원이가 자해를 한다’고 주장할 뿐 문제를 바로 잡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재혼가정이야 흔하다지만, 지원이가 받은 정서적 방임과 육체적 학대는 아이가 극복해낼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것이라고 최 검사는 판단했다. 아버지의 재혼으로 식구가 6명이 된 지원이 가족은 함께 살 넓은 집이 없어 3명씩 나눠 살았다. 지원이는 함께 사는 배 다른 형에게 맞는 게 싫어 집을 나와 풍찬노숙을 택했던 것이다. 가족들은 지금 아동학대ㆍ유기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거나 재판 중에 있다. 가족과의 격리 처분이 내려지면서 돌봐줄 이가 없게 된 지원이는 청소년보호시설로 보내졌다.

검사로서의 직무는 모두 마쳤지만 최 검사 마음은 개운치 않았다. 경제적 어려움이나 가족의 불행으로 돌봐줄 사람이 없어진 아이들이 스스로 아무 잘못도 없이 범행의 피해자가 되거나 잠재적 가해자가 되는 무수한 상황이 지원이 처지와 오버랩 됐기 때문이다. 최 검사는 그런 지원이를 위해 디딤씨앗통장에 월 3만원씩 적금을 들어줬다. 디딤씨앗통장은 저소득층 아동이 매달 일정 금액을 저축하면 지방자치단체가 같은 금액을 적립해주는 복지제도다. 가족이 할 수 없다면 지원이 같은 아이에겐 사회적 지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자기를 지켜보고 있는 사회의 누군가가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손편지를 썼다. 최 검사는 “지원이가 스스로의 아픔을 극복하지 못해 보호시설에서 친구들을 때렸다는 사실을 알고 소통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원이도 마음의 문을 점점 열고 있다. 최 검사에게 “선물도 주시고 후원도 해주셔서 감사하다, 집에서 힘들었는데 시설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답장을 보낸 것이다. 지원이는 이어 “검사님 얼굴을 꼭 뵙고 싶으니 시간이 되시면 꼭 놀러 와달라”고 했다.

최 검사는 “저도 아이를 키우다 보니 남 일 같지 않았고 ‘공익의 대변자’로서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싶었다”며 “어릴 적 가족으로부터 상처를 받은 아이들에게 사회가 관심을 갖지 않으면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버림 받고 학대 받는 아동을 사회가 따뜻하게 보듬어주지 않으면 지금은 피해자인 아이가 엇나갈 수 있고, 나중에 사회에 불만을 표출할 위험도 내재돼 있다는 게 최 검사의 설명이다. 그가 소년 사건 아동들에게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오라”고 숙제를 내주는 등 지속적인 관심을 갖는 이유도 아이들에게 “네 인생은 끝난 게 아니고 누군가 너를 생각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서다.

최 검사는 2013년에도 자신이 조사하던 미혼모 영아 유기 사건 피해 아동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잠을 설쳤다고 했다. 엄마를 처벌하는 게 능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제대로 양육을 받지 못한 아이가 크고 나면 자신의 출생으로 엄마가 처벌받았다는 사실에 마음을 다칠 게 뻔해서다. 최 검사는 아이에게 4년째 디딤씨앗통장을 통해 매월 5만원씩 후원하고 있다.

저서 ‘우는 사람과 함께 울라’를 쓴 윤재윤 전 춘천지법원장은 “판사나 검사가 사건 관계인을 돕는 일은 단지 피해자 한 명을 돕는 것이 아니라 그 가족은 물론 좋은 일을 하고 보람을 느끼는 스스로를 돕는 일”이라며 “무엇보다 사회의 수많은 잠재적 피해자가 도움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예방적 사법기능이라 말한다. 최 검사가 지원이에게 한 일이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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