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했던 국가정보원(국정원)이 예술계 인사 249인을 등급별로 나눠 관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작가회의와 문화연대, 탁현민 대통령비서실 선임행정관이 대표인 PR전문업체 피당 등 진보성향 문화예술단체 15곳도 특별관리 대상이었다.
30일 국정원 적페청산 개혁위원회(개혁위)는 이 같은 내용의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개혁위에 따르면 국정원은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부임한 직후인 2013년 8월, 이듬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좌성향 문예계인물’에 대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작성했고 이듬해 초 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의 문예지금 지원 기준 변경안을 청와대에 보고했다.
이번에 새로 밝혀진 내용은 이후 국정원이 ‘문예계 내 좌성향 세력 현황 고려 사항’이란 제목으로 2014년 3월 19일 추가로 작성한 청와대 보고서다. 대표자 경력과 정부비판, 시국선언, 야당인사 지지 등 활동에 따라 파악된 ‘좌성향 문제 단체’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서울연극협회, 민족미술인협회, 한국영화감독조합 등 15개다. 국정원은 활동 전력과 영향력에 따라 문화예술계 ‘좌성향 인물’ 249인을 A급(24명), B급(79명), C급(146)명으로 활동 현황을 파악하기도 했다. 장르별로는 문학 48명, 미술 28명, 연극 22명, 음악 30명, 영화 104명, 방송 7명, 기타 10명이었다. 황지우, 안도현, 송경동 등 대표적인 진보인사도 있지만, ‘좌성향 단체’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가 다수다. 정치색이 없다고 알려진 하성란, 김별아 소설가는 한국작가회의 회원이라는 이유로 명단에 올랐다. 방송인 겸 행위예술가 낸시랭, 영화감독 봉만대, 도종환 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이 명단에 포함됐다.
보고서에는 이들 단체와 인물들에 대한 지원을 끊어 ‘자금줄’을 차단하고, 이들이 문체부 소속 공공기관 특히 문예위, 영화진흥위원회 등 자금지원 기관 주요 보직에 앉지 못하도록 인사검증을 철저히 하도록 했다. 이들에 대한 비리·부조리 증거를 확보해 압박하라는 취지의 전략도 담겼다.
국정원이 2010년 초 국가발전미래교육협의회(국발협)를 설립하고 국가 예산 63억원을 투입, 2014년 초까지 외곽단체로 운영하면서 기관ㆍ기업ㆍ학교 소속 400만여명을 대상으로 안보교육을 벌인 사실도 확인됐다. 또 개혁위는 원 전 원장 지시로 국정원이 우리법연구회 해체 촉구 심리전을 벌여 사법부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사실도 파악하고 검찰에 자료를 전달할 것을 권고했다. 다만 국정원 직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관련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헌법재판소를 사찰했다는 의혹은 사실로 인정할 만한 사유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개혁위는 밝혔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