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집권한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의 실정과 저유가의 공습에 따른 극심한 경제난, 여기에 미국의 고강도 금융제재까지 겹친 베네수엘라에 ‘국가 부도’ 위기는 더 이상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베네수엘라의 대외부채 규모는 무려 1,500억달러 이상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채무불이행(디폴트) 위험이 닥칠 때마다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나라가 있다. 바로 러시아다. 지난 3년간 베네수엘라에 대한 러시아 측의 재정지원 규모는 100억달러에 이르며, 그로 인해 베네수엘라도 최소 두 차례 이상 디폴트에 빠지는 상황을 면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 곳은 러시아의 국영 석유기업인 ‘로스네프트(Rosneft)’였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29일(현지시간) 러시아가 로스네프트를 외교정책의 수단으로 삼아 전 세계에서 영향력을 퍼뜨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미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그러나 정치적 대립관계에 있는 베네수엘라의 석유 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모습은 결국 석유를 지정학적 도구(geopolitical tool)이자 전략무기로 활용하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러시아 정부가 지분 절반을 소유한 로스네프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이자 부총리를 지낸 이고르 세친이 이끌고 있다. 3년 전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으로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제재 명단에 세친이 오르자 이 회사는 새로운 유전지역을 찾아 나섰는데, 가장 크게 공을 들이고 있는 곳은 베네수엘라다. 지난 4월 베네수엘라 국영 원유회사인 페데베사(PDVSA)에 10억달러의 선급금을 건넸고, 지난해에는 PDVSA의 자회사인 미국 소재 정제기업 시트고(Citgo)의 지분 49.9%를 담보로 20억달러를 대출해 주기도 했다. 이달 모스크바를 찾은 마두로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을 만나 신규 재정지원을 요청한 뒤 “정치적ㆍ외교적 지원에 감사하다”고 말했는데, 이는 PDVSA의 이번 주 만기인 채권 변제를 위해 러시아가 10억달러를 지원, 디폴트를 막도록 해 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미국은 이 같은 러시아 석유기업의 ‘사업 영토 팽창’에 우려의 눈길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가 워싱턴의 ‘뒷마당’에서 전략적 우위를 확보, 미국의 국익이 심각한 위협에 처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리스크’는 여전하다는 게 NYT의 전망이다. 신문은 “베네수엘라 유전은 노후화됐고, 미국의 경제제재는 베네수엘라 재정위기를 가속화할 수 있다”며 “만약 디폴트가 현실화하고 마두로 정권이 무너지면, 로스네프트의 대출금은 새 정부가 지불하기를 원치 않는 ‘불량 대출’로 바뀔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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