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보수국가 사우디아라비아가 내년부터 여성에게 스포츠 경기 관람을 허용하기로 했다. 지난달 내놓은 운전 허용 방침에 이어 여성 인권 개선을 위한 개혁 조치로 평가된다.
29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사우디 체육 당국은 전날 트위터에 “리야드, 제다, 담만에 있는 3개 경기장에서 2018년부터 가족을 수용할 준비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해당 경기장 안에는 식당과 카페 등도 설치된다. 가족 단위 관람은 그간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스포츠 경기장을 여성에게 개방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성의 사회활동 제약이 극심한 나라인 사우디는 공공장소에서 남녀를 분리하는 규정에 따라 여성에게 체육 경기장 출입을 금지해 왔다.
지난달에는 수도 리야드 킹파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건국의 날’ 행사에 여성들을 참석하게 해 처음으로 스포츠 경기장 출입을 허락했으나 경기 관람까지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이번 결정은 왕위계승 서열 1위인 모하메드 빈 살만(32) 왕세자가 주도하는 국가개조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 그는 최근 사우디를 ‘온건 이슬람’ 국가로 바꾸겠다고 선언하고 중장기 사회ㆍ경제개혁 프로그램인 ‘비전 2030’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여성의 사회활동 및 교육기회 보장은 비전 2030의 핵심 과제 중 하나이다.
사우디는 2015년 여성에게 선거ㆍ피선거권을 부여하는 등 점진적으로 여성 권리를 확대하는 정책을 시행 중이다. 지난달에는 국왕 칙령을 통해 내년 6월까지 여성도 운전이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할 예정이다.
다만 성평등 문화를 완전히 정착시키려면 여성을 억압하는 ‘남성 후견인’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비판이 여전하다. 후견인 제도는 여성이 대외활동을 할 때 남성 가족의 동의를 받도록 강제하는 악습이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여성의 행동 결정권을 남성이 쥔 상황에서 몇몇 개혁 조치로는 여권 신장을 이루기 어렵다며 사우디 정부에 근본적인 대안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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