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된 경북산 대신 저가 외지산 납품
9년간 5개 시ㆍ군 97억 원어치 공급
경북 18개 종묘양식업체 모두 연루
동해바닷물에 적응 못해 폐사율 높아
지자체 예산낭비ㆍ어민 피해ㆍ어자원고갈
일부 공무원 묵인도 드러나 파문
도내 대체 양식업자 없어 사업중단 위기
경북도와 경북 동해안 지자체가 어족자원 확충을 위해 추진 중인 전복과 해삼 방류사업이 부실투성이로 드러났다. 종묘생산업자들이 담합해 낙찰가를 높인 것도 모자라 폐사율이 높은 저가 열성종묘를 구입해 납품했지만 해당 지자체는 까맣게 몰랐던 것으로 경찰수사 결과 밝혀졌다.
경북경찰청은 경북 동해안 5개 시ㆍ군이 발주한 전복 및 해삼 방류사업 입찰 과정에 담합하고, 남해안의 저가 열성종묘를 구입해 경북산으로 속여 납품한 혐의(입찰방해, 사기) 등으로 손모(64ㆍ경북 포항시)씨 등 5명을 구속하고 14명을 불구속 송치했다. 별도로 이들의 불법행위를 묵인한 공무원 6명도 허위공문서작성 혐의로 불구속 입건,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에 따르면 손씨 등 경북 동해 지역 양식업자 13명은 2012년부터 4년간 포항 경주시와 울진 영덕 울릉군이 발주한 수산종묘 방류사업에 돌아가며 낙찰 받기로 하고, 미리 업체별로 투찰금액을 정한 뒤 예정가를 써 넣는 방법으로 120억원 상당의 입찰을 방해했다.
이들 중 손씨 등 7명과 또 다른 양식업자까지 8명은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종묘 생산비를 줄이기 위해 남해안산 열성종묘를 자체 생산분과 섞어 포항시 등에 74회에 걸쳐 97억원 상당을 납품했다.
남해안에서 전복 치패를 양식하는 김모(44ㆍ전남 진도군)씨 등 경북 이외 지역 양식업자 8명은 손씨 등의 불법행위를 알면서도 이들에게 공급해 사기방조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5개 시ㆍ군이 2007년부터 9년간 지출한 전복 해삼 방류사업비는 195억원에 이른다. 이 중 절반인 97억원 어치가 열성종묘로 드러난 것이다.
수산업계에 따르면 경북의 전복양식은 길이 4㎝짜리 치패를 바다에 방류, 2, 3년 뒤 8㎝ 이상 자라면 채취한다. 치패를 ‘양식’했지만 이후 2, 3년간은 바닷속에서 자연상태로 자라 자연산이나 다름없다. 남해안 해상가두리나 육상수조에서 양식한 전복이 1㎏에 크기에 따라 2만5,000에서 최고 10만원인 반면 경북 동해안산 전복은 준 자연산을 인정받아 15만원 이상 호가한다.
문제는 먹이의 종류나 양, 수온, 염도 등 서식환경이 다르면 폐사하기 쉬워 아무 데서나 키운 어린 전복이나 해삼을 동해안에 방류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방류사업 참여 업자들은 지역 종묘 양식업자를 육성하고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경북산으로 제한경쟁입찰을 한다는 점을 최대한 악용했다.
일선 지자체 등에 따르면 전복의 경우 4㎝짜리 기준 경북산 치패는 한 마리에 900~1,200원이나 하지만 비슷한 크기의 남해안산은 350~400원에 불과하다.
피해는 고스란히 지자체와 어민들에게 돌아갔다. 수산업계에 따르면 정상적으로 양식한 치패는 80% 이상 살아남지만 열성종묘 생존율은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북의 전복 및 해삼 방류사업 참여 가능 양식업체가 18곳밖에 되지 않고, 그나마 동일인을 제외하면 12명이 좌지우지하기 때문에 이 같은 사기행각이 가능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관련법에 따라 이들 업체에 1개월~2년간 입찰제한이 불가피하지만 제대로 시행될지 미지수다. 대체 업체가 없어 방류사업 중단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형식적 행정처분만 하고 면죄부를 줄지도 모른다는 목소리가 업계에 나돌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전복ㆍ해삼 방류사업을 소수의 종묘생산업체들이 과점한 점을 노려 지자체를 상대로 사기를 벌인 사건으로, 일부 공무원들이 묵인도 확인했다”며 “각 지자체 등에 통보, 피해금을 환수하고 제도개선책을 마련토록 했다”고 말했다.
정광진기자 kjche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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