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탄핵정국 주도한 광장
우상호 “촛불민심, 주저한 정치권 깨워”
박지원 “박근혜 탄핵 비박계가 결정적”
정병국 “하야 요구는 시대 변혁의 열망”
1년 전인 2016년 10월 29일 광화문 광장에서 처음 타오른 촛불은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국민적 탄핵을 의미했지만 동시에 허울뿐이었던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준엄한 경고이기도 했다. 국정농단 세력이 법과 민주주의를 찬탈하는데도 정치권이 방패막이나 형식적 반대자 역할에 그치자 시민이 직접 나서 국가권력을 심판한 것이 바로 촛불혁명이었다.
촛불민심이 정치권에 전하는 메시지는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2항의 정신을 제대로 구현하라는 것이었다. 만약 대의민주주의가 권력의 유지, 적대적 정치세력과의 투쟁에만 매몰된 채 시민의 목소리를 외면한다면 언제든 직접민주주의로 대체할 수 있다는 질책이었다.
광장의 정치는 뒤집어 말하면 대의정치의 위기를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지난 1년은 나라다운 나라,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라는 촛불민심을 정치권이 제대로 이행하는지 지켜보는 시험대였다. 촛불혁명 이후 1년 동안 우리 정치는 얼마나 달라졌는가.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해 지난해 탄핵정국을 이끈 여야의 주역들이 25일 국회 의원회관에 다시 모였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ㆍ박지원 국민의당 의원은 당시 원내대표로, 탄핵정국의 캐스팅보트를 행사했던 옛 새누리당 비박계 출신인 정병국 바른정당 의원은 비상시국위원회 대표자회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진행=김영화 차장
#2. 촛불집회 이후 정치권
우상호 “문재인 정부 방향은 좋은 평가 받아”
박지원 “190석 묶어 연정개혁벨트 필요”
정병국 “진영 논리에 빠져 민심 왜곡”
사회=사실 탄핵정국에서는 촛불민심 앞에 여야 모두 우왕좌왕하는 모습이었다. 민주당도 처음에는 탄핵에는 주저하다 민심을 따라갔다.
우상호=민주당은 국정감사 시작 3주일 전에 이미 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제보를 받고 국감에서 최대 이슈를 만들어야겠다는 계획이었다. 다만 처음에 박근혜 전 대통령 2선 후퇴 논의를 하다 광장보다 늦게 탄핵요구에 합류한 것은 120석(당시 기준) 정당이 탄핵 정족수를 확보하지 않은 채 탄핵을 거론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
사회=당시에 새누리당 비박계가 집권여당임에도 탄핵 찬성으로 돌아선 게 결정적이었다.
정병국=박 전 대통령이 대응과정에서 실기를 하고 대국민 담화에서 잇따라 잘못된 대응을 하자 내부적으로 ‘안 되겠다’는 기류가 생겼다. 그렇게 12명으로 시작한 비상시국위원회에 많게는 50명까지 의원들이 모였고 “광장의 민심은 하야로 가고 있는데 헌정 중단 사태가 없게 하려면 탄핵으로 갈수밖에 없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사회=국민의당은 당시 12월 2일로 디데이를 잡자는 야권 합의와 달리 12월 9일 본회의 표결을 주장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박지원=박 전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회의 결정에 따라 거취를 표명하겠다고 하니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이 12월 7일까지 기다려달라고 요구를 한 상황이었다. 민주당 일각에선 2일 상정해서 부결되더라도 촛불의 힘으로 대혁명, 대청소를 하면 되지 않느냐고 했는데 그건 아니라고 봤다. 내가 확인해보니 우리당에서도 15명이 탄핵을 반대하는 것으로 나왔다. 한마디로 탄핵 분위기가 덜 익었을 때였다. 이후 절충안으로 5일 안을 냈다가 원내대표 회동을 갖고 결국 9일 표결로 합의를 했다. 그러고 나서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으로부터 60석이 확보됐다는 연락이 왔다(실제로 새누리당 이탈표는 62석에 달했다). 탄핵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비박이 금메달, 국민의당이 은메달, 민주당이 동메달이라고 할 수 있다.
우상호=비박계가 결단을 안 했다면 광장에서 유혈사태까지 갔을 것이라고 본다. 당시에 내가 여당 의원이었더라도 그런 결심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회=당시 광장에 가보셨을 텐데 실제로 봤던 광장 민심은 무엇이었나.
정병국=우리 집이 청와대 옆 서촌에 있어 새누리당 의원이었지만 원하든 원치 않든 계속 광장을 볼 수밖에 없었다. 당시 내가 느낀 것은 세대, 이념, 계층 구분 없이 시민들이 나왔다는 것이다. 특정 분야, 특정 계층 사람들의 문제제기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다. 광장에서 느낀 건 ‘대통령은 하야하라’는 시민들의 주장이 결국은 시대변화에 대한 요구라는 깨달음이었다. 개인적으로 직선제 개헌을 쟁취한 6ㆍ29 선언을 남산 안기부에서 맞았다. 30년이 지난 시점에서 87년 체제를 바꾸고 6공화국 시대에서 7공화국 시대로 바꾸라는 명령이라는 판단을 하게 됐다.
우상호=그렇게 많은 인원이 모이고도 차분하고 질서정연하게 집회를 하는 모습에 굉장히 놀랐다. 광장에서 의사 표시가 줄을 이었고 그 다음에는 성찰과 대안제시로 가더라. 분노가 식으면 꺼질 수 있고, 조직화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집회를 지속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3번에 1번 꼴로 집회에 나갔는데 중반쯤에는 촛불민심이 지속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광장의 민심이 정치권에 주는 충격은 컸다. 정치세력이 주저하거나 용기가 없을 때 촛불 민심이 주는 압박은 대단했다. 정치권이 아무것도 안 하려다가 끌려갔다는 건 과도한 지적이지만, 신기하게도 촛불민심은 정치권이 주저하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커졌다. 그러고 나면 의총을 하거나 모임을 할 때 확실히 의원들의 기류가 바뀌는 걸 목도했다.
정병국=6월 항쟁은 재야 운동가, 야당 지도자, 대학 학생회가 앞장섰는데 이번 촛불시위는 국민들이 가장 앞에 섰다. 비폭력 투쟁이었던 촛불집회는 국민의 의식 수준과 통제력이 정치인을 능가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그래서 ‘정치를 잘못하고 있구나. 대통령과 함께 정치가 탄핵된 상황이구나’라고 느꼈다.
사회=그럼 촛불집회 이후 정치권은 얼마나 달라졌다고 생각하나. 국민들은 북핵 위기의 상황에서도 정치권이 여전히 정쟁만 벌이고 있다고 비판한다.
우상호=정치에서 가치관의 차이 때문에 논쟁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다만 대화와 타협을 통해 성과물을 내고 있느냐는 측면에서 보면 정치권이 제대로 된 협치를 하지 못하는 건 사실이다. 더군다나 정계개편 논의가 나와서 각 당이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다만 여당이 얼마나 변했느냐 하는 측면에서 본다면 문재인 정부의 70% 지지율이 어느 정도 국민의 평가를 보여주고 있다고 본다. 국민의 입장에서 정책을 펼쳐 나가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평가를 받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방향 자체에 대해선 국민들이 좋은 평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국회다. 협치가 어떻게 가능한지 고민해야 한다.
정병국=정치권이 지난 겨울 촛불 민심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양당 체제의 체질을 개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욕하면서 배운다고 할까. 이번 국감만 봐도 야당 의석 노트북에 정부 비판 구호가 붙었다. 그것 때문에 입씨름하느라 국감 시작 전 30~40분씩 낭비를 한다. 결국 사람과 여야 간 위치만 바뀐 거다. 여권도 촛불민심을 왜곡해선 안 된다. 탄핵 이전까지 촛불민심은 하나였다. 하지만 탄핵 이후에는 촛불민심만 민심이라고 받아들여선 곤란하다. 태극기를 드는 사람들도 국민이고 같이 가야 할 사람들인데 문 대통령이 진영 논리로 빠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3. 적폐청산에 대한 평가
우상호 “정책전환에 포인트 맞춰야”
박지원 “우호적인 여론 지속 어려워”
정병국 “야당 흔들기보다 미래 위해”
박지원=문대통령이 협치를 내세우면서, 민주당 121석, 국민의당 40석, 바른정당 20석, 정의당 6석과 친여 성향 기타 3석까지 190석으로 연정개혁벨트를 만들어야 한다. 현재 민주당은 국회선진화법 체제에서 121석에 불과한 과반수도 못 되는 당이다. 그런데도 국민의당ㆍ바른정당과는 같이 못 간다는 편협한 인식을 보여줬다. 17명의 국무위원 중 국민의당 3명, 바른정당 2명, 정의당 1명 등 6자리는 비민주당에 줘 개혁벨트로 190석을 묶었어야 했다. 취임 첫날 우리 당을 찾아온 문 대통령에게 이런 얘기를 해주려고 했더니, 사진만 찍고 그냥 가더라.
사회=원전 문제 공론화위원회 도입 등 직접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한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우상호=문 대통령은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중단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대선 공약에도 담은 것이다. 공론화위가 원전중단 결론을 이끌어 내기 위한 ‘가짜 의제다’라는 지적이 있었는데 실제 공론화위에서 19%포인트 차이가 나니까 공사재개 결론을 받아들였지 않았나. 과거 같으면 이렇게 안 한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비판이 있으면 정쟁을 했다. 반면 현 정부 하에서는 원전처럼 새로운 정책 전환이 있고 찬반 의견이 팽팽할 때 숙의민주주의 틀을 활용하고 대통령이 승복하는 전례를 만들어냈다. 국회도 숙의민주주의, 촛불민주주의 받아들이는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
정병국=직접민주주의 확대는 정치권의 업보라고 생각한다. 진영논리에 빠져서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니 과한 액션이 나오게 되고 그러다 보니 국회에서 되는 일이 없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취임 첫날 국회에 와서 야당 대표방을 방문하는 걸 보고 탄성을 질렀다. 이런 식이면 야당은 앞으로 20~30년 집권이 어렵겠구나 생각을 했다. 여소야대 체제라도 당선 첫날 그 마음을 갖고 돌파를 하면 정치권도 명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주요 정책을 공론화 하기 이전에 국회에 와서 연설을 하고 야당 대표를 설득하면 정치권이 어떻게 반대를 할 수 있겠나. 그게 촛불정신이다.
사회=촛불민심은 정부는 물론 사회 안팎의 적폐를 없애라는 주문이기도 했다. 현 정부 들어 진행되는 적폐청산 작업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우상호=과거에 저질렀던 불법ㆍ탈법을 바로 잡는 건 당연한 것이다. ‘이게 나라냐’며 탄핵까지 이르렀던 국민들의 문제제기를 수렴해 실행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1순위는 국가정보원 중심으로 진행됐던 여론조작 선거개입이다. 나머지는 적폐청산이라기보다 정책전환이다. 이 국면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정책전환에 좀 더 포인트를 맞춰 포지티브한 이슈를 주도해나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여야정협의체 같은 정치 틀을 만들어야 한다.
정병국=위법한 문제는 당연히 바로잡아야 한다. 다만 지금 보면 적폐청산이 연일 일간지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국정감사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다. 이렇게 올인 해서 적폐청산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협치는 날아간다. 과거 정권도 사정이다 뭐다 해서 야당을 흔들었지만 부메랑이 돼서 돌아왔다. 적폐청산은 그 이름을 내걸고 하지 말고 미래를 보고 나가다가 적폐가 발목을 잡으면 그때 척결하면 된다. 그러면 국민도 박수를 보낼 것이다.
박지원=마치 제2의 YS(김영삼 전 대통령)를 보는 거 같다. YS 때도 첫 1년의 90%를 적폐청산으로 갔다. 현재 최저임금, 비정규직 보호, 건강보험 보장 확대, 부동산 대책 등에서 갈등이 생기고 있다. 벌써 국민들이 피로증을 조금씩 말하고 있다. 높았던 지지율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더욱이 민주당은 121석밖에 안 된다. 적폐청산에 우호적인 여론은 6개월밖에 못 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사회=탄핵 이후 보수정치가 여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보수정당의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4. 정치권 개혁은 어떻게
우상호 “낡은 것 버리고 새로운 시도”
박지원 “제왕적 대통령제 개헌해야”
정병국 “상대방 인정하는 협치 중요”
정병국=보수는 지키는 것이다. 또 지키는 방법이 도덕적이어야 한다. 자신들이 만든 대통령이 탄핵됐는데 책임지는 사람 없이 이전투구하고 있는 게 자유한국당의 모습이다. 자본주의의 무한경쟁이 양극화를 만들어냈다. 양극화 현상 속에서 발생한 낙오자들을 끌고 가지 않으면 체제를 더 이상 지켜야 할 이유가 없는 거다. 그 갭을 채워주자고 하는 게 바른정당이 주장하는 따뜻한 보수다. 그 원칙에 충실해야 보수정당이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사회=촛불집회는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정치권에 대한 심판이기도 했다. 정치권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우상호=정치권이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바뀌기 위해서 카테고리를 정했으면 좋겠다. 가장 큰 정책틀은 민생 중심의 정책이고 두 번째가 대북문제 관련 안보관리, 세 번째가 적폐 청산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세 번째는 검찰에 맡기는 거다. 현행법 위반 사항만 처벌하고 문재인 정부도 그 부분을 야당이 과하게 정략적으로 느끼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다. 정책과 관련해 어떻게 접근하느냐는 문제가 중요한데 각 당이 의견을 내고 절충점이 있는 부분은 합의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특히 보수정당에 드리고 싶은 충고는 국민들이 싫어하는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탄핵까지 당한 정당이 그 낡은 틀을 유지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면 야당에게 불리하다는 정략적 접근을 버려야 한다.
정병국=상대방을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접근해야지 내가 하는 것만 옳다고 하면 야당이 저항하게 된다. 협치는 집권여당의 몫이다. 야당은 원래 반대하는 집단인데 야당보고 그것을 바꾸라면 바꾸겠는가. 충언을 한마디 하면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다. 경험상으로 뭔가 할 수 있는 시간은 2년밖에 없다. 그 2년을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을 분열시키고 정치권을 편가름하고 진영논리로 접근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박지원=결국은 개헌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국민은 분권형 개헌을 바라는데 청와대는 대통령 중심제의 4년 중임제를 원하고 있다. 민심은 제왕적 대통령 권한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인데, 현 집권 세력은 전직 대통령까지는 제왕적이었으나 자기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런 태도로는 안 된다.
우상호=아직 장관인선도 마무리 안 될 정도로 정권 초기의 혼란과 새 정부의 새로운 시도와 야당의 우려가 복잡하게 펼쳐진 상황이다. 야당이 우려를 이야기하는 건 당연하고 정부ㆍ여당도 야당 얘기를 듣는 귀를 더 키워야 한다. 지지율에 취해서 야당의 이야기를 듣는 측면이 소홀한 점이 있다는 건 인정한다. 다만 한국당처럼 새 정부에 협조 안 하는 모습은 처음 본다. 과거에는 새 정부가 들어서면 적어도 6개월간은 말로는 비판해도 국회에서 동의는 해줬다. 촛불의 가장 큰 성과가 정치권이 국민을 두려워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보수야당이 한때만 잠깐 민심을 두려워했구나 하는 평가를 받는다면 미래가 없을 것이다. 각 당 내부의 사정, 자기 기득권 논리, 다음 선거에서 득실계산이 중첩되면서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그래도 누구에게 피해를 줬기 때문에 짜릿함을 느끼는 과거의 정치에서는 탈피해야 한다.
정리=정상원ㆍ정재호ㆍ손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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