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만 지역사회부장 cmhan@hankookilbo.com
최근 치러진 일본 총선을 두고 북핵 위기로 반사이익을 얻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집권 자민당의 부활이라는 평가가 많은듯하다. 의석수 3분의 2 이상을 확보한 만큼 평화헌법을 개정이 가능해졌고, 전쟁이 가능한 나라로 가는 길이 한층 가까워졌다는 분석도 있다.
겉으로 드러난 결과로만 본다면 그럴지 모르지만 내용을 복기해보면 이번 선거는 아베 총리의 임기 연장을 보장받았다는 이상의 의미를 찾긴 힘들다. 득표수를 보면 이번 총선에서 자민당은 연립정권을 맺고 있는 공명당과 함께 전체 의석 465석중 313석을 차지, 개헌발의선인 310석보다 겨우 3석을 더 많이 확보하는 데 그쳤다. 이미 2014년 총선에서 자민ㆍ공명 연립여당이 475석중 326석을 얻어 3분의2(317석)를 넘는 의석을 확보한 터이니 오히려 전체 의석 비율은 줄어든 셈이다.
헌법 개정을 추진할 의석을 이미 3년전 확보했음에도 큰 진전이 없었던 상황이 지금 와서 크게 달라질 리도 만무하다. 아베 총리가 북핵 위기를 빌미로 헌법 개정의 당위성에 좀 더 목소리를 내는 일은 많아지겠지만 실제 개헌으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적 합의에 도달하기에는 동력이 약하다.
다만 아베 총리과 측근들이 연루된 모리모토ㆍ가케학원 등 잇따른 학원 스캔들로 떨어질 대로 떨어진 지지율을 총선을 발판 삼아 다소 회복하고 임기를 연장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오히려 이번 선거에서 우리가 유심히 보아야 할 것은 불과 수년 전까지 집권당이었던 제1야당 민진당의 몰락 과정이다. 민진당의 전신 민주당은 2009년 자민당의 실정의 반사이익을 얻어 집권했지만 갈팡질팡 정책과 잇따른 총리 교체 등 내부적 문제로 집권 3년만에 자민당에 정권을 다시 내주었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근원적인 문제점은 따져보지 않은 채 지난 해 민진당으로 당명만 교체했으나 구심점 없는 당 운영으로 지지 회복은커녕 제1야당으로서의 위상마저 흔들렸다. 급기야 최근 새롭게 떠오르는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지사가 창당한 희망의당에 공천권한을 일임했다. 당명조차 포기하고 희망의당으로 흡수되면서 사실상 공중분해했다. 진보적 성격의 민진당이 극우성향에 가까운 고이케 정당에 스스로 몸을 내맡긴 것은 정치적 신념보다는 선거에서 당장 한 표라도 더 얻겠다는 얄팍한 꼼수임을 유권자들이 모를 리 없었고, 이번 총선에서 대패했다. 뒤집어 보면 자민당의 승리는 민진당과 희망의당의 오판에 힘입은 어부지리 성격이 강하다.
내년 6월로 다가온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국민의당 등 주요 야당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자유한국당은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주도하기 위해 친박계 의원 출당을 추진중이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친박계 의원 몇 명을 정리하는 수준의 구조조정으로는 국민들을 설득할 수 없다며 보수와 중도를 아우르는 큰 틀의 통합을 꿈꾸고 있다. 이를 위해 내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당과의 연합 공천의 필요성도 주장하고 있다. 국민의당도 바른정당과의 당내당 통합을 추진하다 당내 반발로 여의치 않자 우선 정책연대부터 시작하겠다는 입장이다. 5월 대선 이후 잠잠하던 야당 재편움직임은 현 상태에서 내년 지방선거를 치른다면 야당의 참패로 끝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절박함이 묻어있지만 저마다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의도가 묻어난다.
중요한 것은 당장 당리당략과 눈앞에 닥친 선거에서 몇 표를 더 얻어내기 위한 졸속적인 재편을 추진하다가는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잃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철저한 내부 반성없는 기계적 통합으로 선거를 치르다가는 불과 수년전 집권당이었던 정당의 존재마저 사라질 수 있다는 일본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