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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 해거리에 ‘알쓸신잡’도 포기한 루시드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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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 해거리에 ‘알쓸신잡’도 포기한 루시드폴

입력
2017.10.3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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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지으며 음악하는 루시드폴

‘모든 삶은, 작고 크다’ 앨범 발매

가수 루시드폴은 지난 8월 제주에 지은 오두막에 스웨덴 음악인 사이먼 페트렌을 초대했다. 밴드 더티 룹스의 프로듀서인 페트렌은 오두막에서 고기 국수를 먹으며 루시드폴과 신곡 '폭풍의 언덕'을 만들었다. 안테나뮤직 제공
가수 루시드폴은 지난 8월 제주에 지은 오두막에 스웨덴 음악인 사이먼 페트렌을 초대했다. 밴드 더티 룹스의 프로듀서인 페트렌은 오두막에서 고기 국수를 먹으며 루시드폴과 신곡 '폭풍의 언덕'을 만들었다. 안테나뮤직 제공

직접 지은 ‘노래하는 집’

가수 루시드폴(조윤석ㆍ42)은 지난 3월 오두막을 얻었다. 제주에서 직접 일구는 3,300㎡(1,000평)규모의 과수원 한가운데 16㎡(5평)의 터를 내 2층 건물로 지었다. 수확한 귤과 농기구를 보관할 창고와 음악 작업실이 절실해서다. 지난해 11월 공사에 들어가 완성까지 넉 달이 걸렸다. 루시드폴은 목수 부부 등 지인의 도움을 받아 설계도를 그리고 나무를 잘라 직접 집을 세웠다. 기타를 만들 때 쓴다는 음향목으로 2층에 음악 작업실을 만들고, 이름을 ‘노래하는 집’이라 붙였다. 작곡을 위해 건반과 컴퓨터도 들였다. 루시드폴은 창문 밖으로 봄볕을 밭아 반짝이는 귤나무를 보며 악보를 채웠다.

“작은 오두막에 앉아 지금 그대에게 노래를 보내고 있어요.” 루시드폴은 30일 공개한 8집 ‘모든 삶은, 작고 크다’의 타이틀곡 ‘안녕’의 노래처럼 앨범에 실린 9곡을 ‘노래하는 집’에서 녹음했다. 지난 26일 서울 강남구 안테나뮤직 사옥에서 만난 루시드폴은 “녹음할 때마다 서울로 올라와야 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며 “특별한 공간에서 곡을 쓰고 녹음해 음악을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자신이 사는 곳의 특별한 울림까지 음악에 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의 욕심처럼 오두막은 ‘노래의 밭’이 됐다. 여느 스튜디오와 다른 소리의 반향으로 오두막은 ‘악기’가 됐고, 주변의 새소리는 예상치 못한 ‘음표’가 됐다. 루시드폴은 한여름 밤 과수원의 풀벌레 소리를 모아 수록곡 ‘밤의 오스티나토’에 실었다.

가수 루시드폴이 새로 지은 오두막에 앉아 눈을 감고 있다. 새 앨범 사진으로 쓰인 이 사진은 그의 아내가 찍었다. 안테나뮤직 제공
가수 루시드폴이 새로 지은 오두막에 앉아 눈을 감고 있다. 새 앨범 사진으로 쓰인 이 사진은 그의 아내가 찍었다. 안테나뮤직 제공

레몬 농작도 시작… 흑백 다큐멘터리로 변한 음악

루시드폴은 2014년 결혼한 직후 제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스위스 로잔공과대 공학 박사 출신으로 마종기 시인과 책까지 낸 ‘음유시인’은 농부처럼 살았다. 한 뙈기의 땅도 없던 그는 어렵게 빌린 밭에 귤을 키웠다.

그에게 농사는 생업이었다. 제주 이주 2년 만인 지난해 자신의 과수원을 꾸린 그는 같은 해 지역의 농협에 조합원으로 가입했고, 친환경 귤 재배로 지난달엔 무농약 인증까지 받았다.

루시드폴은 레몬 농작도 시작했다. 다만 “작년에 태풍 치바의 영향으로 나무의 순이 많이 뽑혀” 걱정이다. “해거리(해를 걸러 열매가 많이 열리는 현상)로 귤 수확량이 적어 두 번째 홈쇼핑 판매를 포기했다”며 고민하는 그는 영락없는 농사꾼이었다. 곡 작업과 농사를 병행하느라 올 여름엔 tvN 예능프로그램 ‘알아두면 쓸데 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알쓸신잡’) 출연 제의도 정중히 고사했다.

삶이 변하면 창작의 열매도 달라진다. 4년째 흙을 밟고 산 그의 음악은 투박해졌다. 2년 전 낸 7집 ‘누군가를 위한’과 비교해도 날 것의 소리가 확연히 두드러진다.

그는 ‘안녕’의 기타 연주를 친구이자 음악 동료인 이상순에게 부탁했는데, 일부러 오래된 앰프(소리 증폭기)로 소리를 내달라고 했다. 그는 미국 뉴욕에서 1960년대 베이스를 공수하고, 70년대산 드럼, 80년대 제작된 피아노를 구해 새 앨범의 소리를 채웠다. 루시드폴은 “이젠 너무 정교한 소리엔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 때문이 아니라 그 (투박한)소리가 더 신선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그는 이 관심의 변화를 LP를 찾는 청춘과 비교하며 “힙(Hipㆍ개성 있는)한 소리를 찾아 2년 동안 매달렸다”고 힘줘 말했다. 루시드폴은 “내가 만약 농사를 짓지 않고 시골에 살지 않았다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소리”라며 “삶의 변화에 따라 음악도 변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새 앨범이 흑백 다큐멘터리 같은 이유다.

오두막 공사에 한창인 가수 루시드폴 뒤로 나무에 귤이 달려 있다. 그는 지난 26일 서울 강남구 안테나사옥에서 새 앨범 인터뷰를 마친 뒤 밤 비행기를 타고 제주로 갔다. 주말엔 과수원에 가 귤나무를 챙겼다. 안테나뮤직 제공
오두막 공사에 한창인 가수 루시드폴 뒤로 나무에 귤이 달려 있다. 그는 지난 26일 서울 강남구 안테나사옥에서 새 앨범 인터뷰를 마친 뒤 밤 비행기를 타고 제주로 갔다. 주말엔 과수원에 가 귤나무를 챙겼다. 안테나뮤직 제공

“다음엔 악기를 직접 만들어 볼까요?”

루시드폴은 “사람이 더 좋아졌다”. 그는 이달 초 300여 팬들에 ‘그 동안 잘 지냈나요?’라는 문구를 손으로 써 우편으로 엽서를 보내 앨범 발매 소식을 먼저 알렸다. 2년 전 홈쇼핑에서 직접 기른 귤과 7집을 판매한 그는 더 낮은 곳에서 사람을 향하는 방식으로 8집을 냈다.

노래도 밝아졌다. 그는 “눈을 감은 그대여 아침이 왔어”(‘부활절’)라고 희망도 얘기한다. 이 곡은 부활절 전야인 4월 15일에 완성됐다. 세월호가 3년 만에 물밑에서 올라온 날이다.

루시드폴은 CD를 책(위즈덤하우스)과 함께 낸다. 지난 2년간 새 앨범을 만들며 겪은 일을 수필로 엮었다. 그는 책에서 자신을 ‘산책 가이드’라 표현한다. 음악은 누군가를 가상의 산책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루시드폴이 앞으로 소개해줄 음악의 길은 어디일까. 그는 ‘익숙한 아름다움의 가짓수만 늘리기 보다는 갸우뚱할지언정 가보지 못한 길’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바랐다. 루시드폴은 내달 4일 제주를 시작으로 전북 전주, 서울 등에서 내달까지 공연을 이어간다.

“다음 앨범 구상도 하고 있어요. 악기를 직접 만들어 소리를 내볼까 싶어요. 논문을 써두고 발표를 못한 게 있어요. 이 논문과 함께 음악을 내볼까 싶은 생각도 하고요, 하하하.”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가수 루시드폴은 CD를 에세이와 엮어 새 앨범으로 냈다. 그는 "내 글이 건조하더라"며 "이공대생의 한계"라며 웃었다. 안테나뮤직 제공
가수 루시드폴은 CD를 에세이와 엮어 새 앨범으로 냈다. 그는 "내 글이 건조하더라"며 "이공대생의 한계"라며 웃었다. 안테나뮤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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