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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기한이익 상실” 통지 받으면 빚 수렁으로

입력
2017.10.2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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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연체 2개월 후부터 기한이익 상실

3개월 뒤 지연배상금 8만원→220만원 눈덩이

지나치게 채권자 위주 설계로 채무자에 가혹

국회서 문제 제기… 제도 개선될지 관심

여의도 한 은행에서 고객들이 상담 등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의도 한 은행에서 고객들이 상담 등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00월00일부터 기한 이익의 상실 사유에 해당됩니다.’

‘기한 이익의 상실’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문장만 놓고 보면 그 의미를 짐작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금융사에서 이런 통지서를 받았다면 그때부터 연체자로선 악몽의 밤이 시작됩니다.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거든요.

은행에서 돈을 빌리면 대출만기란 걸 정합니다. 빌린 돈을 최종적으로 은행에 갚는 날이죠. 대신 만기일까지 대출이지만 꼬박꼬박 잘 갚으면 채무자는 만기 전까지 원금을 갚지 않아도 됩니다. 바꿔 얘기하면 일정 기한 대출금을 갚지 않아도 되는 이익이 채무자에게 생기는 건데, 이를 ‘기한 이익’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일정 기간 이상 채무자가 약속한 이자와 원금을 갚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만기 전까지 원금을 갚지 않아도 되는 권리가 사라집니다. 금융사가 기한이익을 상실한 채무자에게 만기 전이라도 대출금 전액 상환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당연히 빌린 돈을 제때 갚지 못하면 금융회사가 채무자에게 어느 정도의 페널티를 부과하는 건 불가피합니다. 채무자로선 돈을 갚아야 할 유인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제도는 채무자의 채무상환을 유인하는 수단이라기 보단 지나치게 금융사의 수익을 보전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지적입니다.

은행을 예로 들어 볼까요.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연체 2개월 후부터 기한이익 상실 효력이 발생합니다. 기한이익 상실 전까진 ‘이자’에 대출금리와 연체금리 6~7%를 더해 지연배상금을 산출합니다. 기한이익 상실 뒤부턴 ‘이자’가 아닌 ‘대출잔액’에 연체이자율을 매겨 산출하는데요. 은행이 적용하는 최고 연체이자율은 15%에 달합니다. 예컨대 집을 담보로 3억원(만기 20년 기준,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분석)을 빌린 경우, 연체 첫 달에는 8만8,000원 가량의 배상금을 물면 되지만 연체 후 석 달 뒤(기한이익 상실)부턴 202만원으로 갚아야 할 배상금이 껑충 뜁니다. 연체 1년 뒤엔 지연배상금이 3억원 수준으로 불어납니다. 이를 되돌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은행에 갚는 돈은 비용, 이자, 원금의 순서로 충당돼 배상금을 먼저 갚지 않으면 원금은 깎이지 않아 이자 부담은 그대로 남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른 나라도 똑같이 기한이익 상실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기한이익이 상실됐을 때 대출원금에 연체이자율을 더해 배상금을 물리는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보다 훨씬 덜 가혹합니다. 일본은 기한이익 상실 때 대출원금이 아닌 갚아야 할 금액에만 적용합니다. 호주는 연체가 발생하면 바로 가산금리를 부과하지 않고 금융사가 법적으로 회수할 수 있는 90일 전까지 채무자와 협의해 채무를 어떻게 갚아나갈 것인지 일종의 계획표를 만들어 채무자가 일정에 따라 빚을 갚도록 해줍니다. 연체이자율도 우리보다 낮습니다. 미국은 3~6%, 영국은 2%, 프랑스는 3%로 한국(최대 15%)보다 훨씬 낮죠.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연체 페널티 제도가 지나치게 채권자 위주로 설계돼 있다고 지적합니다. 김영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다른 나라의 연체이자율 부과방식은 정상적인 채무상환을 위한 채무자의 유인을 독려하기 위한 차원이지만 우리나라는 채권은행에게 손실보전을 상회하는 초과 수익을 보장하는 구조”라고 꼬집었습니다.

최근 이 같은 문제 인식이 퍼지면서 제도 개선에 대한 요구도 커지고 있습니다. 최근 당정 협의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금융위에 제도 개선을 요구했습니다. 연체 2개월 후부터 기한이익이 상실되는 건 채무자의 빚 부담을 과도하게 늘리는 유인이 되는 만큼 이를 연장하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겁니다.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한이익 상실로 은행이 채무자에게 가혹한 이자를 물려 손실을 보전하기 보단 연체 일정 기간 후 채무자와 직접 협의해 채무조정을 받는 식의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도 문제 의식에 공감하는 만큼 개선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밝혔습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취약차주를 위한 정부 대책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최근엔 10ㆍ24 가계부채 대책에서 연체금리 인하, 금융권의 담보권 실행 유예 등의 대책도 내놨습니다. 하지만 담보권 실행 유예 등은 일부 신청자에만 적용되는 제도라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지난 2014년 기한이익 상실 기간이 한달 연장된 뒤 그간 대책 논의도 전무했습니다. 이달 30일 열리는 종합국감 때 정무위원회 여당의원들은 기한이익 상실 문제를 제기한단 방침인데, 3년 만에 개선안이 마련될지 관심 있게 지켜봐야겠습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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