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미국 정보기술(IT) 업체 ‘아카마이 테크놀로지스’에 근무하던 트래비스 칼라닉(41)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한 학회에서 개릿 캠프(39)를 만났다. 캠프는 당시 꽤 주목을 받던 콘텐츠 검색 및 공유 플랫폼 ‘스템블어폰’을 만든 사람이다. IT 기업 창업 경험이란 공통분모를 갖고 있던 두 사람은 금세 가까워졌고,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대화하다 밤이 깊어 택시를 불렀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택시. 분통을 터뜨리던 두 사람은 ‘이 지옥 같은 파리의 택시 서비스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하는 논의를 하게 된다. 이들은 택시 서비스가 엉망인 근본적 이유는 경쟁이 없기 때문이며, 허가제로 막혀있는 시장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하면 경쟁이 생겨 자연스럽게 서비스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의기투합했다.
누구나 자기 차를 이용해 택시처럼 다른 사람을 태울 수 있고, 차가 필요한 사람은 모바일로 가까이 있는 차를 호출해 탑승하면 되는 서비스로 전 세계에 교통 혁명을 일으킨 ‘우버’ 역사의 첫 페이지는 이렇게 쓰였다.
그로부터 약 1년 뒤인 2009년 설립된 우버는 현재 633개 도시에서 차량 공유 서비스와 이를 기반으로 한 음식 배달 서비스 등을 운영한다. 지난해 매출은 65억달러(약 7조3,378억원)나 되지만 아직 투자 비용이 버는 돈보다 많아 흑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몸값이 높은 신생벤처기업(스타트업)으로 꼽힌다. 수년째 미국 포브스가 집계하는 유니콘 스타트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 순위에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우버의 기업가치는 620억달러(약 70조원)로, 현대자동차 시가총액(약 35조원)의 2배에 이른다.
우버가 이렇게 성장하기까지는 개릿 캠프와 회사를 공동 창업한 트래비스 칼라닉이 있었다. 저돌적인 경영자 칼라닉은 각국 규제와 택시업계의 극렬한 반발에도 우버를 세계 최대 스타트업으로 키워낸 일등 공신이지만, 그런 칼라닉의 강압적 면모가 올해 우버를 창사 이래 최대 위기로 몰아넣기도 했다. 그는 우버의 이미지와 가치를 추락시킨 데 대한 책임을 지고 결국 지난 8월 다라 코스로샤히 전 익스피디아 최고경영자(CEO)에게 CEO직을 넘겼다.
그러나 칼라닉이 곧 우버요, 우버가 곧 칼라닉이라는 평가가 있을 만큼 우버는 칼라닉의 DNA가 깊게 베어 있는 회사다. 외신에서는 앞으로도 칼라닉이 우버의 이사회 멤버로서 새 CEO 못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UCLA를 중퇴한 타고난 창업가
1976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칼라닉은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컴퓨터공학과 경영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UCLA 졸업장을 받지는 못했는데, 재학 중 창업한 첫 번째 스타트업이 가능성을 보이자 경영에 전념하고자 1998년 중퇴했기 때문이다.
1998년 당시 미국에서는 이용자끼리 MP3 파일을 공유할 수 있는 P2P 서비스 ‘냅스터’가 인기를 끌고 있었다. 칼라닉은 냅스터의 모델을 본떠 그보다 하나 더 나아간 P2P 서비스 ‘스카워’(Scour)를 내놨다. MP3뿐 아니라 동영상 등 다양한 파일을 공유할 수 있는 P2P 서비스였다.
하지만 스카워는 파일의 불법 공유를 돕는 플랫폼이라, 얼마 가지 않아 저작권을 가진 방송사, 영화사 등으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이들 업체는 칼라닉에게 막대한 금액의 손해배상을 요구했고, 감당할 여력이 되지 않았던 칼라닉은 고의로 회사를 파산해 소송을 피했다.
놀라운 건 그다음이다. 2001년 칼라닉은 방송사, 영화사와 정당하게 협의를 맺고 콘텐츠를 제값에 판매하는 ‘레드스우시’(Red Swoosh)를 만들었다. 스카워 모델을 합법화한 데다 돈까지 벌 수 있는 사업이었다. 칼라닉은 자신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던 업체들을 반대로 찾아가 손을 내밀었다. 그의 결단과 실천에 힘입어 회사는 안정적으로 성장했고, 2007년 칼라닉은 1,900만달러(약 214억원)을 받고 아카마이에 레드스우시를 매각했다.
규제는 편리함을 이길 수 없다
칼라닉이 레드스우시 매각 대금을 종잣돈 삼아 2009년 세운 우버는 사실 태생부터가 불법이었다. 허가를 받지 않고 유사 택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였기 때문이다. 칼라닉도 이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규제 때문에 사용자가 불편을 겪는다면 그 규제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확고했다. 스카워 역시 불법 서비스였음에도 원하는 콘텐츠를 빠르고 쉽게 공유할 수 있어서 이용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것처럼, 우버도 이용자들에게 인정받는다면 규제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어쩌면 무모했던 그의 자신감은 결국 통했다. 우버는 불법 논란에도 이용자들의 지지를 받으며 미국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했다. 사람들이 택시 대신 우버를 이용하자 택시업체들은 정부에 이의를 제기했고, 기사들은 거리로 몰려나와 우버 퇴출 운동을 벌였다. 미국 주 정부들이 우버의 처리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사이 우버 이용자는 더욱 늘어만 갔다. 우버에 불법 딱지를 붙일 경우 이용자들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해지자 대부분의 주 정부가 우버를 합법 서비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우버는 미국 대중교통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고, 해외로도 뻗어 나갔다.
스캔들로 얼룩진 우버… 창업자의 퇴장
글로벌 시장에서 각국 규제와 맞서며 어렵게 성장해 온 우버는 올해 큰 시련을 맞았다. 위기는 올해 초 칼라닉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경제자문단에 합류하며 시작됐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트럼프의 반(反)이민행정명령 등에 반발하는 미국 시민들은 우버 탈퇴 운동을 벌였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우버를 지우자는 캠페인(#DeleteUber)이 빠르게 퍼졌고, 칼라닉은 결국 5일 만에 자문직을 사퇴했다. 하지만 때는 이미 이용자 20만명 이상이 우버를 등진 뒤였다.
그 후로도 우버를 둘러싼 구설은 끊이지 않았다. 전직 우버 개발자가 “직속 상사가 노골적으로 성적 추파를 던졌는데, 회사는 이 문제를 덮는 데 급급했다”고 폭로해 네티즌의 뭇매를 맞는가 하면, 구글의 자회사인 웨이모가 “우버가 우리 자율주행차 기술을 빼돌렸다”며 소송을 냈다.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해 경찰의 단속을 피해왔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일련의 논란을 수습해야 할 칼라닉은 우버 기사에게 막말하는 동영상과 과거 직원들의 사내 성관계를 권장하는 듯한 이메일을 보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되레 비난의 중심에 섰다. 이 과정에서 ‘우버 2인자’로 불렸던 제프 존스 사장을 비롯한 핵심 임원 10여명이 줄줄이 회사를 떠났다.
주요 투자자들로부터 사퇴 요구를 받던 칼라닉은 결국 지난 6월 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한때 글로벌 게임체인저,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2016년ㆍ64위), 40세 이하 미국 최고 기업가(2015년ㆍ4위)로도 꼽힌 실리콘밸리 거물의 씁쓸한 퇴장이었다.
칼라닉의 뒤를 이어 CEO를 맡게 된 코스로샤히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다행히 아직 우버 안팎의 평가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그가 이란계 미국인으로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는 점에서 이민자 출신이 많은 우버 기사들의 지지가 대단하다. 2005년부터 10여년 간 익스피디아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왔으며, 특히 직원들과의 관계가 원만했다는 것도 그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우버를 위한 전사가 되겠다”며 구원 등판한 코스로샤히의 리더십이 우버에서도 통할지 눈길이 쏠린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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