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배우가 감독까지 겸업하기는 쉽지 않다. 여자배우는 더욱 그렇다. 방은진 이전에 여자배우 출신 감독은, 1965년 ‘민며느리’로 연출 데뷔한 최은희 밖에 없었다.
방은진이 영화 연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1998년 즈음이다. 몇 편의 영화와 뮤지컬이 좌초되고 여자배우의 활동 한계를 체감하던 때, 친한 영화인들의 단편영화 작업을 도운 게 계기가 됐다. 출연도 하고 스태프로 일손도 보태면서 영화 현장에서 새로운 재미를 발견했다. 연출에 대한 꿈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명계남 이스트필름 대표가 그 꿈에 씨앗을 심었다. 소설 원작인 ‘떨림’의 각색을 맡긴 데 이어 방은진의 시나리오 ‘첼로’ 개발과 제작까지 지원했다. 방은진은 이스트필름 사무실로 출퇴근하며 감독 데뷔를 차근차근 준비했다.
그 씨앗을 싹 틔운 건 강우석 감독이다. ‘첼로’가 무산돼 낙담하고 있던 방은진에게 ‘입질’이란 시나리오를 건네며 연출을 부탁했다. ‘입질’은 강우석 필름아카데미에서 개발한 시나리오다. 한때는 강 감독이 연출까지 고려했던 작품이다.
강 감독의 제안을 받아야 할지 주저하고 있던 방은진을 이창동 감독이 독려했다. “그 시나리오를 ‘방은진화’ 하면 된다”며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이 감독의 조언은 여린 싹이 무럭무럭 자라는 데 거름과 햇빛이 됐다. 그렇게 만든 영화가 바로 데뷔작 ‘오로라 공주’다.
‘오로라 공주’는 2005년 3월 14일 첫 촬영을 시작했다. 2월 말 테스트 촬영 때 스태프들은 감독 의자와 메가폰을 준비하고 교통 통제까지 하면서 실제 촬영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방은진을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방은진은 그날의 고마움을 잊지 못한다. ‘오로라 공주’는 이스트필름이 제작하고, 강 감독이 설립한 시네마서비스가 투자배급했다.
신인감독답지 않게 촬영 속도가 빨랐다. 빨리 찍기로 유명한 강 감독에 빗대 ‘여자 강우석’이라는 수식어도 생겼다. 여러 모로 인연이 깊다.
명계남과 강우석과 이창동. 이젠 한국영화계를 이끄는 중견 감독이 된 방은진의 인생에 결정적 계기를 마련해준 세 사람이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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