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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 공주’와 세 남자

입력
2017.10.28 04:4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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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은진의 감독 데뷔를 도운 제작자 명계남과 강우석 감독, 이창동 감독. 한국일보 자료사진
방은진의 감독 데뷔를 도운 제작자 명계남과 강우석 감독, 이창동 감독.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에서 배우가 감독까지 겸업하기는 쉽지 않다. 여자배우는 더욱 그렇다. 방은진 이전에 여자배우 출신 감독은, 1965년 ‘민며느리’로 연출 데뷔한 최은희 밖에 없었다.

방은진이 영화 연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1998년 즈음이다. 몇 편의 영화와 뮤지컬이 좌초되고 여자배우의 활동 한계를 체감하던 때, 친한 영화인들의 단편영화 작업을 도운 게 계기가 됐다. 출연도 하고 스태프로 일손도 보태면서 영화 현장에서 새로운 재미를 발견했다. 연출에 대한 꿈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명계남 이스트필름 대표가 그 꿈에 씨앗을 심었다. 소설 원작인 ‘떨림’의 각색을 맡긴 데 이어 방은진의 시나리오 ‘첼로’ 개발과 제작까지 지원했다. 방은진은 이스트필름 사무실로 출퇴근하며 감독 데뷔를 차근차근 준비했다.

그 씨앗을 싹 틔운 건 강우석 감독이다. ‘첼로’가 무산돼 낙담하고 있던 방은진에게 ‘입질’이란 시나리오를 건네며 연출을 부탁했다. ‘입질’은 강우석 필름아카데미에서 개발한 시나리오다. 한때는 강 감독이 연출까지 고려했던 작품이다.

강 감독의 제안을 받아야 할지 주저하고 있던 방은진을 이창동 감독이 독려했다. “그 시나리오를 ‘방은진화’ 하면 된다”며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이 감독의 조언은 여린 싹이 무럭무럭 자라는 데 거름과 햇빛이 됐다. 그렇게 만든 영화가 바로 데뷔작 ‘오로라 공주’다.

‘오로라 공주’는 2005년 3월 14일 첫 촬영을 시작했다. 2월 말 테스트 촬영 때 스태프들은 감독 의자와 메가폰을 준비하고 교통 통제까지 하면서 실제 촬영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방은진을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방은진은 그날의 고마움을 잊지 못한다. ‘오로라 공주’는 이스트필름이 제작하고, 강 감독이 설립한 시네마서비스가 투자배급했다.

신인감독답지 않게 촬영 속도가 빨랐다. 빨리 찍기로 유명한 강 감독에 빗대 ‘여자 강우석’이라는 수식어도 생겼다. 여러 모로 인연이 깊다.

명계남과 강우석과 이창동. 이젠 한국영화계를 이끄는 중견 감독이 된 방은진의 인생에 결정적 계기를 마련해준 세 사람이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방은진 감독이 25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 아트나인에서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 앞서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지이 인턴기자
방은진 감독이 25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 아트나인에서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 앞서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지이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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