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리대 발암물질 검출됐는데도
“평생 써도 안전” 큰소리 친 당국
부가세 면제 주장엔 재정부 저항
여성의 일상 이해 못하는 사회
#2
생리 사라진 미래 소녀 경험 통해
고통 노골적이나 유쾌하게 묘사
유머ㆍ수다에 사랑 역사 과학 담아
수십차례 상 휩쓴 최고 인기 작가
올해 8월, 국내에서 시판 중인 한 생리대에 발암물질 성분이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나면서 큰 논란이 되었다. 이 생리대에 대한 환불과 항의가 이어지던 와중에 상황은 점입가경이 되었다. 다음 달 10종의 유명 브랜드에서 그보다 더한 발암물질이 검출된 것이다. 식약처는 84개 생리대의 전수조사가 다 끝나기도 전에 ‘평생 써도 안전하다’고 성급히 발표하면서 논란에 불을 지폈다. 지난 17일 국정감사에서는 식약처가 이미 3월에 생리대에 발암물질이 있다는 연구보고를 받았지만 조치가 없었으며, 허가받은 생리대 1,000개 중 안전성ㆍ유효성 검사를 받은 생리대가 4개뿐이었다는 점도 밝혀졌다. 여성의 생리의 중요성과 일상성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이해가 형편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미 작년 유한킴벌리가 생리대 가격을 크게 인상하면서, 저소득층 소녀들이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 학교에 가지 못하거나 신발 깔창까지 쓴다는 문제가 대두된 바 있다. 저소득층이 보다 저렴하게 쓸 수 있는 생리컵 수입과 판매는 올해에나 겨우 논의가 되었다. 2000년대 초반 여성단체가 생리대는 필수품이니 부가가치세 면제 대상으로 하자는 캠페인을 진행했을 때, 재정경제부에서 ‘속옷과 화장품을 면세하라는 소리’라며 저항하기도 했다. 생리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이해부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생리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다
생리대 이슈가 지속되는 동안 SF 팬 사이에서는 종종 코니 윌리스의 단편 ‘여왕마저도’가 언급되었다. ‘여왕마저도’는 여성이 생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미래세계를 다룬 단편이다. 소설 속에서 여성들은 의약처치를 통해 생리를 하지 않는다. 여기에 자연주의 여성운동에 빠진 소녀가 ‘자연스럽게 생리를 하자’는 주장을 펴자 외할머니와 할머니, 엄마와 언니가 모두 난리가 난다. 이 신세대 소녀는 생리를 실제로 접한 뒤에야 “왜 이런 것이라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느냐”며 때려치워 버린다. 이 소설은 생리를 하느냐 마느냐로 설전을 벌이는 가족의 소동을 통해, 여성이 겪는 생리의 고통을 노골적이고도 유쾌하게 보여준다.
윌리스가 ‘왜 당신은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쓰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고 썼다는 이 단편은 1993년에 휴고상, 네뷸러상을 비롯해 다섯 개의 상을 휩쓸었다.
하지만 로맨스 코미디 SF의 대가인 윌리스가 여성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건 좀 이상한 말인 것 같다. 그리고 윌리스는 이미 그보다 8년 전에 여성에 대한 탁월한 단편인 ‘사랑하는 내 딸들이여’(1985)를 쓴 바 있다. 한국에서도 1994년에 단편집 ‘세계 휴먼 SF 걸작선’에 수록되어,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체체파리의 비법’과 함께 국내 팬들 사이에서 일찍부터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이 단편에서는 남자애들 사이에서 유전공학으로 만든 애완동물 ‘타쓸’이 대유행을 한다. 남자애들은 이 애완동물을 ‘우리 딸’로, 자신은 ‘아빠’로 부르며 사랑하고 귀여워한다. 이 짐승은 털북숭이에 몸이 길고 자그마한 연약한 생물로, 단지 몸 뒤쪽에 핑크빛 구멍이 있다. 여자애들은 남자애들이 어떤 용도로 이 짐승을 쓰는지 눈치를 채고 불편해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타쓸이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순간을 보기 전까지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 이 작품에는 다각도의 불편한 비유가 숨어 있고, 가학적인 장면 하나 없이 충격적인 전개를 보여준다.
로맨틱 코미디 SF의 대가
코니 윌리스는 현재 가장 인기 있는 SF 작가 중 하나로, 유머러스하고 유쾌한 글쓰기 스타일로 사랑받는다. 그녀의 작품 스타일은 주로 등장인물들이 정신없이 수다를 떨면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으로, 폭풍처럼 몰아치는 수다와 유머에 빠져 있다 보면 어느새 수백 페이지짜리 이야기가 끝나 있곤 한다.
윌리스의 대표작은 국내에도 일찌감치 소개된 옥스포드 시간여행 시리즈로, 그녀의 데뷔작인 ‘화재감시원’도 이 시리즈에 속한다. 주로 옥스포드대 교수와 학생들이 역사공부를 위해 시간여행을 하는 시리즈로, 이들은 1932년대 성가대 의상을 스케치한다든가, 중세 영어의 어미변화를 연구하겠다든가 하는 자그마한(물론 이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다) 꿈을 품고 과거로 여행을 떠난다. 이 시리즈는 “시공간에는 탄력성이 있어 작은 것은 바뀌어도 큰 역사는 변화에 저항한다”는 흥미로운 설정에, 시간여행을 한 사람은 살짝 취한 듯 정신이 오락가락한다는 ‘시차 증후군’이라는 설정을 더해 연신 재미있는 소동을 유발한다. 학생들이 역사를 바꾸지 않으려 조심조심하며 열심히 역사의 현장을 탐구하고, 고양이 한 마리를 구하거나 한 연인 커플을 맺어주려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사랑스럽기만 하다.
시리즈 중 하나인 장편 ‘개는 말할 것도 없고(또는 우리는 어떻게 해서 마침내 주교의 새 그루터기를 찾게 되었는가)’에서 주인공 네드는 평화로운 19세기 옥스퍼드에서 요양을 하려다가 한 남녀의 만남을 방해하는 바람에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이 패배할 가능성을 높이게 되고, 인류를 구원할 한 쌍의 연인을 맺어주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 소설의 제목은 1889년 제롬 K. 제롬이 쓴 코믹여행기이자 세계적인 고전인 ‘보트를 탄 세 남자, 개는 말할 것도 없고’에서 따온 것으로, 시간여행자들은 실제로 템스강에서 여행 중인 세 남자를 직접 목격하며 독자를 역사의 현장으로 데려간다. 또 다른 작품인 ‘둠즈데이 북’의 제목은 정복왕 윌리엄이 잉글랜드의 인구통계를 담기 위해 쓴 책에서 따왔다. 중세 언어를 연구할 꿈에 부풀어 여행을 떠났던 중세학과 학생 키브린이 흑사병이 창궐하는 마을에 떨어지는 바람에 질병과의 사투를 벌이게 된다. 이 작품들은 모두 저자의 방대한 자료조사와 철저하고 세심한 고증이 돋보이며, 시간여행의 요소만 없다면 진지한 역사소설로서도 손색이 없다.
로버트 하인라인, 셰익스피어, 제인 오스틴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윌리스의 작품에는 세 사람의 향취가 모두 담겨 있다. 윌리스의 소설은 하인라인처럼 유쾌하고 시원시원하며, 셰익스피어의 희극처럼 유머러스한 대화로 이야기를 전개하며, 제인 오스틴처럼 낭만적인 사랑을 그려낸다. 윌리스는 인터뷰에서 자신이 주로 쓰는 로맨틱 코미디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에게, 로맨틱 코미디가 세상에 전하는 메시지는 이런 것입니다: ‘사랑은 긍정적인 힘이다. 어른스럽고 성숙한 사랑이란, 남을 위해 희생하며, 개인의 욕구를 명예, 용기, 의무, 가족에 우선하지 않는 것이다.’ 로맨틱 코미디의 결말에서는 모든 나쁜 일들이 해결됩니다. 그 소설들은 사랑이 승리할 수 있고, 소통이 승리하고, 이해가, 연민이 승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가끔 세상에서는 그런 것들이 승리합니다.”
이미 와 있는 ‘여왕마저도’의 세계
소설 ‘여왕마저도’에는 암메네롤이라는 생리 억제 약이 등장한다. 작품에서 이 약은 원래 생리를 없애려고 발명된 약이 아니라 우연히 효과가 발견된 약으로, 여성들이 결집해 남자들과 기업, 종교계의 반대와 싸워 의약용품으로 허가받은 약이다. 어째서인지 부수효과로 종교계가 여자를 사제로 받아들이는 효과도 가져왔다.
이 소설의 상상은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고, 사실 이제 더 이상 미래의 일도 아니다. 이미 임플라논, 미레나 등 여성의 생리를 줄이거나 멈추게 해 주는 시술이 있고, 장기 피임, 극심한 생리통, 직업상의 필요, 혹은 단순한 자신의 선택으로 시술을 받는 여성들이 있다. 논란은 있을지언정 여성이 생리를 중단할 수 있는 시대는 코앞에 와 있는 셈이다. 실제로 이 시술을 받는 이들이 가장 곤란을 겪는 점은 기술적인 문제 이전에, 산부인과를 가는 것조차 곱지 않게 보는 주변의 인식이라고 한다. ‘여왕마저도’의 세계에서도 여성들이 일상에서 생리를 중단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기술 이전에 사회적 합의였다.
생리에 대해서는 여전히 ‘여자는 한 달에 한 번 생리한다’는 부정확한 문장 이상의 교육이 없는 편이다. 덕분에 인터넷에서는 오랫동안 “왜 여자는 생리휴가일이 매달 변하느냐(알다시피, 변하지 않을 방법이 없다)”는 항의가 생리 관련 기사의 베스트 댓글이기도 했다. 그렇게 한 문장만 남길 바에는 이렇게 말하는 게 조금 더 정확하지 않을까. “여성은 일상의 10분의 1에서 4분의 1에 이르는 시간을 지속적으로 다량의 피를 흘리며 생활하고 있다”라고.
생리는 ‘마법’이나 ‘그날’로 표현될 만한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훨씬 더 일상적인 일이다. 평범한 일상의 문제로 다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더욱 큰 불편과 고통을 동반한다.
김보영ㆍSF 작가
콘스탄틴 엘레인 트리머 윌리스
1945년 12월 31일~ . 주로 코니 윌리스로 불린다. 미국의 SFㆍ판타지 작가. 교사로 일하며 작품을 기고하다 1982년 단편 ‘화재감시원’으로 휴고 상과 네뷸러 상을 동시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SF 작가 중 하나로 11번의 휴고상과 7번의 네뷸러상, 12번의 로커스상을 수상했다. 2009년 과학소설 명예의 전당에 올랐고, 2011년 28대 그랜드 마스터에 선정되었다. 70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소개된 책> 소개된>
여왕마저도
코니 윌리스 지음
김세경 등 옮김
아작 발행
화재감시원
코니 윌리스 지음
김세경 등 옮김
아작 발행
개는 말할 것도 없고
코니 윌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열린책들 발행
둠즈데이 북
코니 윌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열린책들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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