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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친구 사귀는 게 부담되는 교육현실

입력
2017.10.27 16:54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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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를 수행하다가 가끔 의외의 연구결과에 맞닥뜨리곤 한다. 종내 의문을 풀지 못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가외의 노력과 시간이 의문 해소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물론 발상의 획기적 전환이 답을 주는 경우도 있다. 예상을 빗나간 연구결과는 오기와 호기심을 더욱 자극해 연구를 지속할 동력을 제공하는 게 일반적이다.

한국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무엇에 영향을 받는지 10년 넘게 연구를 해왔다. 계층 간 교육격차 해소에 필요한 대안을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간 연구를 해오면서 적잖이 당혹감에 휩싸였던 연구결과가 하나 있다. 당혹감을 넘어 씁쓸함을 느꼈다고 하는 게 좀 더 정확한 표현이 되겠다. 교우관계가 좋은 학생일수록 학업성취도가 떨어진다는 게 그것이다.

교우관계는 믿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있는지,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혼자 있기보다는 친구와 함께 어울리는지, 도움이 필요한 친구를 도와주는지 등을 물어서 측정했다. 곰곰이 뜯어보면 한결같이 건전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한 사회관계 발달에 무척 중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시되는 학업성취도를 높이는 데는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우리 교육의 맹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연구결과가 아닐 수 없다.

절친한 또래의 존재가 학업성취도에 발휘하는 부정적 효과는 학교급이 올라갈수록 강해진다. 학교급이 올라갈수록 학습량이 크게 늘어나고 경쟁의 강도도 더 세지기 때문일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선 친구와 일상의 고단함을 털어내는 시간을 잠시라도 갖는 것 자체가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회자되는 공감능력을 키우는 데는 원만한 교우관계가 큰 도움이 된다. 부모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거나 교사와 잘 지내는 것보다도 훨씬 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최근 필자가 관련 연구를 직접 수행하여 밝혀낸 따끈따끈한 연구결과다.

당사자인 학생 입장에선 적잖이 혼란스러울 것이다. 절친한 친구의 존재가 자신의 장래와 관련하여 양면적 가치를 갖기 때문이다. 흉금을 터놓고 힘들 때 도움을 받는 친구라 하더라도 당장 성적을 높이는 데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요구되는 핵심역량인 공감능력을 함양하는 데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이러한 상황에선 대다수 학생이 당장은 대학 입시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 데 도움이 되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크다. 먼 미래까지 고민할 여유가 있는 학생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친구와 돈독한 우정을 나누는 것은 청소년의 사회적, 정서적 발달에 매우 중요하다. 당장은 원활한 학교적응의 전제조건으로 작용하며, 장차 성인이 되어 성공적인 대인관계를 바탕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데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청소년이 친구를 사귀며 상당한 심적 부담을 느끼게 하는 교육생태계는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것이 되기 어렵다.

이런 교육생태계를 방치한 채 학생들의 피폐해진 인성을 바꾸겠다고 나서는 건 실효성이 없거니와 진정성을 갖기도 어렵다. 인성교육진흥법을 도입한들 실질적으로 달라질 게 거의 없다. 자칫 설익은 정책이라도 강구되면 교육계의 혼란만 가중될 공산이 크다.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고 실효성 있고 타당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

단기적으론 친구들 간에 과도한 경쟁을 유발하고 교육적으로 득보다 실이 더 큰 내신부터 혁파할 필요가 있다. 이는 공교육 혁명을 가져올 고교학점제 시행을 위한 선결요건이기도 하다. 장기적으로 좀 더 근본적 해법을 찾고자 한다면 기초연구부터 수행해야 한다. 무엇이 지금과 같은 상황을 초래하고 있고, 그걸 바로잡아 교육생태계의 건강성을 회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제대로 파악하는 일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얘기다.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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