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예술가들이 대중 예술인 ‘게임’을 재해석하는 독특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지난 14일 시작한 서울 강남 AYA아트코어브라운의 ‘MUTE’ 전시가 그것이다.
MUTE 전시는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게임 중 하나인 <뮤>를 순수예술가 5인이 재해석한 프로젝트다. 사진 작가부터 알루미늄판을 긁어 그림을 그리는 작가, 테이프로 초상화를 만드는 작가 등 다양한 예술가가 모였다. 이들은 왜 게임이라는 ‘대중예술’을 소재로 붓과 펜을 잡았을까? 그리고 게임을 통해 어떤 것을 보여주려 했을까? 전시를 기획한 홍소민 아트디렉터와 전시에 참여한 박초월, 장정후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람들은 게임 속에서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싶어하고, 더 좋은 것을 얻으려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때문에 게임 속에서 나를 가꾸고 관계를 만들고 때론 싸우고 상처받으며 희로애락을 경험한다. 게임은 우리들의 삶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사람들의 삶과 가장 가까운 예술인 ‘게임’을 재조명해 독자들에게 스쳐 보냈던 ‘나’를 보여주려 한다. 익숙한 게임 BGM을 끄고 현실에서, 다소 생소할 지 모르는 재해석된 게임을 통해서.”
MUTE 전시전 팜플렛에 담겨있는 전시의도를 요약한 글이다. 이번 MUTE 전시전은 5인의 순수예술가가 <뮤> IP를 자신의 방식대로 재해석한 것을 청중에게 보여주는 행사다. AYA아트코어브라운의 홍소민 아트디렉터와 웹젠 관계자는 전시회의 이런 작품들을 소개하며 “현대적인 콘텐츠인 게임과 순수 예술이 만나 작가들의 독창적인 재해석과 메시지를 전달해 주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전시회에서 공개된 작품들은 <뮤>의 이미지를 활용하긴 했지만, 원작 <뮤>의 느낌은 약하고 작가 개개인의 화풍이 폭발한 듯한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면 작가들은 <뮤> 를 어떤 의도로 재해석했을까? 다음은 전시전에 참여한 작가 2인에게 들은 작품 설명이다.
# 게임과 현실, 나와 캐릭터, 그리고 나와 타인 간의 연결을 말하다
<뮤> 캐릭터가 어렴풋이 보이는 위 사진은 박초월 작가의 사진이다. 박초월 작가는 평소 ‘연결’이라는 테마에 몰두하는 사진작가다. 그가 MUTE 전시에 낸 작품 2점 또한 <뮤> 아트웍과 그의 사진 작품을 결합(그의 말을 빌리면 연결)한 작품이다.
박초월 작가가 <뮤>, 정확히는 온라인게임에서 보여주고자 하고 싶은 것 또한 ‘연결’이었다. 그는 사용자가 온라인에서 캐릭터를 조종하며 가상의 세계를 살아가는 온라인게임을 통해 사람과 캐릭터가 연결되고, 이 안에서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고, 나아가 이들이 관계를 통해 자신들이 존재하는 현실과 게임이라는 가상이 연결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는 <뮤> 시리즈의 대표캐릭터인 흑기사와 흑마법사를 그의 작품 ‘생명의 나무’ 시리즈와 결합했다. 생명의 나무 시리즈는 땅과 하늘을 잇는 ‘나무’라는 소재를 활용해 나와 너, 사람과 신의 연결이라는 주제를 표현한 작품이다. 그는 이 시리즈에 앞서 말한 두 캐릭터를 녹였다. 두 작품이 합쳐진 그림 위엔 무수히 많은 선을 그어 각기 다른 두 작품의 경계를 흐렸다. 그는 사진 위에 그린 선을 사람과 사람 사이의, 혹은 현실과 가상 사이의 경계라고 말했다. 경계가 경계를 허물고 하나를 만든 셈이다.
박초월 작가는 이를 설명하며 “가상이라는 틀 때문인지 사람들은 자신과 캐릭터를 분리해 생각하고 행동한다. 하지만 이 둘은 서로 한 몸과 같이 연결돼 있다. 사용자와 캐릭터는 별개가 아니고, 캐릭터가 게임 안에서 하는 것 또한 사용자와 별개가 아니다. 이러한 ‘연결’을 표현하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 현실과 게임, 그 안에서 발생하는 사람들의 열망
장정후 작가는 알루미늄판 위에 그림을 그리고, 다시 그 그림을 긁어내 알류미늄 질감을 드러내는 독특한 미술 작품을 주로 선보이는 작가다. 그는 평소 심취하는 주제는 ‘불가능해 보이기만 하는 이상을 성취하려 하는, 그리고 성취해 내고 마는 인간’이다. 그가 작품 명으로 주로 쓰는 ‘La Eapada’(스페인어로 ‘칼’)라는 글귀도 칼을 수시로 부딪히는 것처럼 격렬히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다.
장 작가는 이번 전시전에서도 같은 테마를 잡았다. 현실이든 게임이든 사람은 항상 무언가를 추구하고 또 성취하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한 점에선 <뮤>의 아트웍을 본 딴 캐릭터가, 그리고 다른 한 점엔 그가 이미지한 가상의 캐릭터가 담겨 있다. 그리고 이 캐릭터들 주변으론 그라인더 등으로 그림을 긁어내 알루미늄 광택을 드러냈다. 전시장 안에서 보면 그가 긁어낸 부분이 마치 캐릭터 주변을 둘러싼 빛처럼 보인다. 장 작가는 이를 ‘사람들의 의지와 열망’라고 표현했다.
“게임으로 테마가 바뀌긴 했지만, 내가 보여주고 싶은 테마는 똑같다. 그리고 사람들도 현실에서든 게임 안에서든 항상 무언가를 추구하고 무언가에 열망한다. 이번 작품도 게임이라는 소재만 빌렸을 뿐, 사람들의 항상 보여주는 이런 열망을 보여주고 싶었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장정후 작가의 설명이다.
# 순수예술가들이 생각하는 예술, 그리고 게임
그렇다면 순수예술을 하던 작가들은 평소와 달리 게임이라는 소재를 자신들의 예술에 녹이며 어떤 고민을 했을까? 이들이 생각하는 예술은, 혹은 게임이란 콘텐츠는 어떤 것일까? 다음은 홍소민 아트디렉터와 박초월, 장정후 작가와의 일문일답이다.
혹시 <뮤> 시리즈를 해봤는가? 해봤다면, 혹은 해보지 않았다면 그것이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어떤 영향을 줬는가? 뮤>
박초월: 사실 난 TV도 잘 보지 않는 사람이라 <뮤>도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처음 알게 되었다. 게임도 오락실이 50원, 100원 하던 시절 <갤러그>와 <스트리트파이터>를 한 것이 전부다. (웃음)
그래서 작품을 준비할 때 <뮤>라는 게임 자체보단 이미지에 집중했다. 작품 소재로 흑마법사와 흑기사라는 캐릭터를 선택한 이유도 누구는 앞서 나가 싸우고 누구는 뒤에서 강렬한 일격을 준비한다는 구도가 마음에 들어서였다.
장정후: <뮤 온라인>이 나왔을 때 1년 정도 해봤다. 워낙 옛날 기억이라 지금의 발전된 버전하곤 많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 때의 기억이 작품을 준비할 때 많은 도움이 됐다. 일단 내가 가지지 않은 ‘판타지’적인 이미지를 <뮤> 덕에 수시로 회고하며 작업할 수 있었다. 또한 작품에 <뮤> 캐릭터를 재해석하고, 또 나만의 이미지를 그릴 때도 그 1년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다.
이번에 전시를 한 사람으로서 이번 시도와 <뮤> 라는 게임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뮤>
박초월: 덕분에 새로운 시도, 새로운 표현을 할 수 있었다. 게임과 아트의 만남이라는 것 자체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앞으로도 이런 결합이 많았으면 좋겠다.
장정후: 나는 <뮤>라는 게임, 나아가 모든 게임이 훌륭한 인터랙티브 아트라고 생각한다. 특히 <뮤>는 여러 작품이 있는 게임계에서도 수십 년을 이어온 시리즈다. 계속 새로운 작품을 내며 독자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고. 이런 면모는 다른 예술 작품에선 보기 힘든 무기라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회는 모두 <뮤> 라는 소재를 썼다는 것 말곤, 작가 5명이 말하고 싶은 것이나 표현 방법 모두를 자유롭게 결정한 자리였다. 혹시 전시회를 준비하며 다른 작가에게 경쟁심을 느끼거나, 반대로 영감을 받은 적 있는가? 뮤>
장정후: 그룹전을 경쟁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사람마다 가진 것과 잘하는 것이 다르듯, 우리 5명도 서로의 영역이 모두 다르다. 때문에 오히려 이런 자리가 다른 4명에게 무언가를 배우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경쟁심을 느낀 적도 없고 특정 작가에게 영감을 받은 적도 없다. 영감은 다른 작가 모두에게 받는다.
박초월: 이번 전시회는 <뮤>라는 소재를 빌어 5명의 작가가 각자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한 자리라고 생각해 달라. 서로 걸어간 길이 다르듯 나온 결과도 다르다. ‘다르기’ 때문에 경쟁심도 느끼지 않는다.
게임을 향유하는 이들과 순수 예술을 향유하는 이들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이번 전시회는 이런 상반된 소재를 결합하는 자리인데, 이로 인한 어려움은 없었나?
박초월: 나는 우리가 하는 것과 게임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하는 것을 흔히 순수예술이라 얘기하는데, 이런 애기를 들을 정도로 특정한 사람들만 우리가 만든 것을 보진 않는다. 그렇다면 전시회도 이렇게 열린 장소가 아니라, 문 잠그고 초대받은 사람에게만 했어야 하겠지. (웃음) 물론 우리가 하는 것이 대중가요처럼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진 않지만, 밖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괴리된 영역도 아니다.
실제로 얼마 전엔 우리 전시회에 어린이들 여럿이 놀러와 재미있게 작품을 보고 갔고, 한 번은 이쪽에 관심 없는 내 지인 둘이 전시회를 즐겁게 보고 갔다. 특히 마지막에 말한 지인 둘은 예술은 물론 게임에도 관심 없는 아줌마들인데 전시회 재밌게 보고 바로 그 자리에서 <뮤>도 찾아 설치하더라.
홍소민: 실제로 오픈 첫 날에 게이머 분들이 우리 전시회에 잔뜩 찾아와 주셨다. 그동안 많은 전시회를 열었지만, 이번처럼 많은 독자들이 와 주시고 재미있게 즐겨주신 적은 처음이었다.
장정후: 앞서 얘기했듯이, 나는 게임이 가장 성공한 예술장르라 생각한다. 게임과 예술은 다르지 않다. 때문에 조금만 생각을 달리하면 예술도 게임처럼 즐길 수 있다. 만약 전시회의 그림을 보면 움직이지 않는 게임, 정적인 게임이라고 생각해 달라. 그럼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게임과 순수 예술의 구분이 ‘인지’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아, 물론 이와 별개로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며 평소와 달리 의도적으로 표현을 쉽게 한 것은 있다. 예전 작품에선 그림도 어렵고 강렬했고 어떤 때는 알루미늄판을 긁는 효과가 많아 그림이 거의 가려졌는데, 이번엔 그림도 게임 아는 사람들이 알아보기 쉽게 하고 효과도 조금 줄였다. 이건 보다 관객들과 소통하고 싶은 나 개인의 노력이라고 생각해 달라.
디스이즈게임 제공 ▶ 원문보기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