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한 이방인
정한아 지음
문학동네 발행ㆍ256쪽ㆍ1만3,000원
미국 천재사기꾼 프랭크 애버그네일의 실화를 다룬 영화 ‘캐치미 이프 유 캔’의 ‘순소설 버전’을 보는 기분이랄까. 슬럼프에 빠진 소설가가 자신의 소설을 훔친 사기꾼을 추적하는 장편 ‘친밀한 이방인’ 얘기다. 문제의 인물은 합격하지 못한 대학에서 교지 편집기자로 활동했고, 음대 근처에 가본 적도 없으면서 피아노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자격증 없이 의사로 밥을 번다. 1960년대에 140만달러를 횡령했던 프랭크와는 ‘스케일’면에서는 비교할 수 없이 초라하지만 소설가까지 네 가지 직함을 통해 각기 다른 세 남자의 부인, 한 여자의 남편으로 산 ‘결이 다른 이력’을 갖고 있다.
“지난 3월, 나는 신문을 읽다가 흥미로운 광고를 보았다.” 7년간 소설을 쓰지 못한 작가 ‘나’는 ‘이 책을 쓴 사람을 찾습니다’란 문구와 함께 소설 일부가 실린 신문 광고를 읽고 충격에 빠진다. 작가가 데뷔 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공모전에 제출했던 장편이었던 것. 더 이상 광고를 싣지 말라고 신문사에 연락한 후 뜻밖의 여자, 진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온다. 6개월 전 실종된 남편 이유상을 찾고 있다는 진은 남편이 광고 속의 소설을 쓴 작가로 행세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그 사람의 본명은 이유미, 서른여섯 살의 여자예요. 내게 알려준 이름은 이유상이었고, 그전에는 이안나였죠.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아요. 여자라는 사실까지 속였으니 이름이나 나이 따위 우습게 지어낼 수 있었겠죠. 그는 평생 수십 개의 가면을 쓰고 살았어요. 내게 이 책과 일기장을 남기고 육 개월 전에 사라져버렸죠.”
나는 저 파란만장한 사기사(史)를 일기에 남긴 이유상, 아니 이유미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교지 편집기자, 음대 교수, 의사로 이안나를 만났던 주변인들의 회상과 작가의 일상이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되며 화자가 소설을 쓸 수 없는 복잡다단한 사연도 소개된다. 여기서부터 추리물과 순소설이 갈리는 지점. 화자는 다분히 문어체적인 말투로 진에게 고백한다. “지난주에 당신을 만나고 나서, 일주일 내내 마치 뭔가에 사로잡힌 것처럼 그 이야기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어요. (…) 저는 그 사람의 반복된 거짓과 위증이 무엇에 기인하는지 그 시작과 끝을 알고 싶어요.”
파란만장한 이유미의 삶에 비해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탄했던 화자는, 남편이 마련해준 작업실에서 외도를 하고 그 외도를 굳이 고백해 집안에 풍파를 일으킨다. 유일한 버팀목인 친정도 복잡하긴 마찬가지라서 암 말기 선고를 받은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이혼을 선언하고 집을 나간다. “아버지와 엄마. 나는 그들과 한집에서 이십 년간 함께 살았지만 두 사람의 진짜 관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 우리가 질서를 연기하는 한, 진짜 삶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그렇다면 진짜 삶은 어디 있는가?”
반복된 거짓말에 끝없이 번민하고, 그러면서도 진심 어린 사랑을 바라는 이유미의 면면은 화자와 묘하게 겹친다.
한데 이유미는 도대체 미발표 원고를 어떻게 찾아낸 걸까. 진은 정말 이유미가 여자라는 사실을 몰랐던 걸까. ‘미끄러지듯 매혹되는 이야기’. 출판사의 홍보문구가 과장이 아니라는 듯 작가는 이야기의 끝에 반전을 심어둔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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