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은 25일 “대법원장의 방대한 권한에 대한 우려와 걱정이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제왕적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권한에 대해 많은 고심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여러 위원회를 통해 권한 분산ㆍ행사 방안을 연구하겠다”고도 했다. 대법원장 스스로 권한을 내려놓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선언적 의미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 조속히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
대법원장의 권한과 영향력은 막강하다. 헌법에 따라 대법관 13명 전원과 헌법재판관 3명 등 모두 16명에 달하는 최고 법관 제청 권한을 가진다. 대법관제청자문위가 있지만 대법원장의 의중을 거스르는 경우는 없다. 전국의 법관 3,000여명의 인사권을 갖고 있고 사법부전체를 관리하는 사법행정권도 집중돼있다. 이런 과도한 권한은 사법부 구조를 수직화해 일선 법관들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해야 하는 법관들이 수뇌부의 눈치를 봐야 한다면 진정한 사법부 독립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일선 법관들도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 집중에 큰 우려를 표시해 왔다. 지난 3월 법원 국제인권법연구회가 판사 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대다수는 ‘제왕적 대법원장’과 ‘사법부 관료화’가 사법부 독립을 침해하는 주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판사 10명 중 9명 꼴로 대법원장과 법원장에 반하는 의사표시를 하면 보직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답변도 나왔다. 대법원 정책에 비판적인 판사들의 동향을 파악해 관리하고 있다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도 대법원장의 비대한 권한과 무관하지 않다.
대법원장 권한 분산의 우선적 과제로 제시되는 게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이다. 대법원장을 중심으로 한 사법부의 수직적 질서가 형성되도록 하는 핵심 요인이기 때문이다. 김 대법원장이 청문회에서 밝힌 대로 대법관후보추천위가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반 법관 인사와 관련해서도 법관추천위원회 추천절차 도입 등 인사권의 민주적 분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고법 부장 승진제 폐지와 법원행정처 축소도 시급하다.
사법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민적ㆍ시대적 요구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제도 개혁을 위한 실무준비단’을 곧 출범시켜 전반적인 사법 개혁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권한 분산은 물론 전관예우 근절 등 사법부 불신을 막기 위한 수준 높은 윤리 기준도 정립해야 한다. ‘김명수 대법원’ 체제의 명운이 사법 개혁 실현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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