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투표법 개정 발의했지만
논의조차 못한 채 1년째 계류 중
정치권이 내년 6월 지방선거에 맞춘 개헌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개헌투표의 법적 근거가 되는 국민투표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30년 가깝게 개정되지 않은 현행 국민투표법에는 사전투표 등 이미 공직선거법 개정을 통해 도입된 주요 투표 제도들이 반영돼 있지 않아서다. 국민투표법 개정 없이 정치권의 구상대로 내년 6월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투표가 실시될 경우 심각한 혼란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2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등에 따르면 재외국민투표와 선상투표, 사전투표는 공직선거법 개정을 통해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도입돼 이제 안정화 단계에 들었다는 평가다. 사전투표의 경우 지난 5월 대선 때 투표율이 26%에 이를 정도로 투표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국민투표법은 지난 1989년 이후 개정작업이 이뤄지지 않아 공직투표법 개정을 통해 도입한 새로운 투표 방법이 전혀 반영돼 있지 않다. 때문에 국민투표법의 개정 없이 개헌투표가 실시될 경우 사전 투표를 비롯해 재외국민투표와 선원들의 선상투표는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선관위 관계자는 “지난 30년간 현실적으로 국민투표를 치를 일이 없었기 때문에 정치권에서도 관련법 개정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고 전했다.
사전투표 등을 제외하고도 현행 국민투표법에는 변화한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한 조항들이 적지 않다. 대중매체를 이용한 투표운동 관련 조항이 대표적이다. 현행 공직선거법 상에서는 신문ㆍ방송ㆍ인터넷 등을 통한 광고를 허용하고 있지만, 현행 국민투표법에서는 어떤 형태의 광고도 일절 금지하고 있다. 단체에 의한 투표 독려 운동도 공직선거법 상에서는 국가기관과 공공기관 등 선거운동이 금지된 일부를 제외하고는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국민투표법에서는 금지 항목이다. 투표 독려를 할 수 있는 시기 또한 공직선거법 상에서는 투표 당일을 제외하고는 모두 허용하고 있지만, 국민투표법에서는 투표 공고일로부터 투표일 전일까지로 제한하고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많은 유권자들이 그간 공직선거법에 따른 투표 규정에 익숙해져 있어, 이에 준하는 국민투표법 개정이 선행되지 않은 채 개헌투표가 진행될 경우 상당한 혼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물론 정치권이 이런 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6건 정도 발의 돼 있다. 지난해 8월 김도읍 자유한국당 의원이 재외국민의 투표권을 보장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한 것을 비롯해 지난 5월에는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선상투표 도입과 신문ㆍ방송ㆍ인터넷 광고 등을 허용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제출해 놓은 상태다.
하지만 해당 법안들은 여야의 주요 쟁점 법안들에 밀려 소위 논의조차 진행되지 못한 채 길게는 1년 이상 계류 중이다. 이번 정기국회에서도 여야가 쟁점 법안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부딪치고 있어 처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개헌특위 관계자는 “헌법재판소가 이미 지난 2014년 재외국민들의 투표 참여를 제한하는 현행 국민투표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 있다”며 “위헌 시비를 없애고 내년에 예정된 개헌 투표를 정상적으로 치르기 위해서라도 여야가 하루 빨리 국민투표법 개정안 논의에 착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환 기자 bluebir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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