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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히든 히어로] 한국선수와 LPGA 34승 “선수 심리까지 ‘캐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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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히든 히어로] 한국선수와 LPGA 34승 “선수 심리까지 ‘캐디’합니다”

입력
2017.10.26 16:4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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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캐디 딘 허든

프로골퍼 생활 6년에 빚만 쌓여

친한 친구 부탁으로 캐디 입문

편한 분위기 만드는게 중요

열흘 전 고진영 첫 우승때도

“라이벌들도 떨고 있어” 조언

한국 갤러리문화 아직 미흡

시즌 후엔 한국어 배울 계획

고진영의 캐디 딘 허든(호주)이 24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17 한국일보 본사 사옥에서 본보와 단독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진만 기자
고진영의 캐디 딘 허든(호주)이 24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17 한국일보 본사 사옥에서 본보와 단독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진만 기자

신지애, 유소연, 서희경, 전인지, 김효주, 고진영…

세계 여자 골프를 호령하는 이들의 골프백이 수도 없이 그의 어깨를 거쳐갔다. 열흘 전 인천 영종도에서 펼쳐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는 캐디로 통산 50번째 우승을 일궜다. 1992년부터 25년 동안 캐디로 활동하며 한국 선수들과 34승을 합작한 베테랑 캐디 딘 허든(53ㆍ호주)의 이야기다.

딘 허든(왼쪽)이 지난달 인천 영종도 스카이72 골프장에서 열린 LPGA투어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고진영을 격려 하고 있다. 딘 허든 제공
딘 허든(왼쪽)이 지난달 인천 영종도 스카이72 골프장에서 열린 LPGA투어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고진영을 격려 하고 있다. 딘 허든 제공

지난 24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17 한국일보 본사 사옥에서 그를 만났다.

호주 남동쪽, 시드니와 멜버른 사이 어디쯤 있는 조그마한 마을 ‘베콤’에서 태어난 그는 소식적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크리켓, 풋볼 등 그 어떤 운동에서도 남들에게 뒤지지 않았다. 12살 되던 해 아버지의 권유로 처음 골프채를 잡은 그는 발군의 성장을 거듭하며 2년 만에 스크래치(핸디캡이 없이 동일 출발선에서 출발하는) 골퍼가 돼있었다. 선수가 되기로 했다. 시드니로 유학을 떠났고, 통산 28승을 거둔 프랭크 필립스(호주)를 사사했다.

“18살 때 프로로 전향해 호주, 캐나다, 아시안 투어를 돌았어요. 1980년대 후반에는 남서울CC에서 열린 한국오픈에도 출전해 컷 탈락 하기도 했죠. 열심히 연습하고 노력했지만 저는 좋은 선수가 아니었어요. 생계를 유지하기도 벅찰 정도였죠. 6년 정도 투어 활동을 하다가 뒤를 돌아보니 통장엔 빚만 쌓여 있었고, 더 이상 골프선수로는 성공할 수 없겠다는 걸 깨달았어요.”

은퇴를 이미 결심하고 나선 마지막 대회, 준우승으로 상금도 많이 받고 지갑도 두둑해졌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6년 동안의 삶이 정말 힘들었기 때문이다 다시 골프채를 잡지는 않았다. 호주로 돌아가 골프 강사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캐디를 할 생각은 없었어요. 고향으로 돌아가 골프 아카데미를 열 계획이었죠. 그 때 호주에서 같이 투어 생활을 했던 친한 동료가 제게 찾아왔어요. ‘너는 내 스윙도 잘 알고, 골프 지식도 해박하니까 캐디를 해달라고’. 친한 친구의 부탁이니 거절하지 못하고 하겠다고 했죠. 딱 1년만 하고 다시 호주로 돌아가자고 마음 먹었어요. 여기까지 올 줄은 꿈에도 몰랐죠.”

하지만 하루 아침에 선수에서 캐디로 주파수를 조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캐디가 되고 나니 너무나 어색했어요. 골프 장에 나가더라도 내가 도무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지 감이 안 잡혔죠.” 그 때 타이거 우즈의 캐디로도 유명한 스티브 윌리엄스(뉴질랜드)의 조언은 그에게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하루는 제가 그에게 어떻게 하면 캐디를 잘 할 수 있냐고 물어봤어요. 그의 대답은 간단했죠. ‘네가 골프를 직접 한다고 상상해라’.” 주니어 시절 은사인 필립스에게 배운 것도 캐디로 활동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프랭크는 단순히 골프 기술뿐 아니라 투어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지, 코스에서 마인드 컨트롤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노하우를 전수해 줬어요. 비록 선수로는 성공하지 못 했지만, 캐디 생활을 하는데 큰 자산이 됐죠.”

지난 15일 인천 영종도 스카이72 골프장에서 열린 LPGA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고진영(오른쪽)이 우승하는 순간 딘 허든이 두 팔을 활짝 벌려 축하해주고 있다. 그의 친한 친구가 찍었다던 이 사진을 허든은 지금도 자신의 휴대전화에 간직하고 있다. 딘 허든 제공
지난 15일 인천 영종도 스카이72 골프장에서 열린 LPGA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고진영(오른쪽)이 우승하는 순간 딘 허든이 두 팔을 활짝 벌려 축하해주고 있다. 그의 친한 친구가 찍었다던 이 사진을 허든은 지금도 자신의 휴대전화에 간직하고 있다. 딘 허든 제공

실제로 그는 당시 배운 노하우들을 필드에 나가 선수들에게 적용한다. 이달 중순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이 단적인 예다. 고진영이 2ㆍ3번 홀 연속 보기를 범하며 흔들리자 그가 나섰다. “직설적으로 말했어요. ‘너 지금 떨고 있냐’고 했더니 ‘정말 정말 떨린다’ 고 하더라고요.” 그때 그는 함께 경기를 하던 전인지, 박성현 등을 가리켜 보였다. “봐라, 저기 저 세계적인 선수들도 떨고 있다. 전혀 두려워할 필요 없다.” 심리적 안정을 되찾은 고진영은 그 후 연속 버디를 낚아 생애 첫 LPGA투어 트로피를 차지했다.

덕분에 그는 선수들 사이에서도 직업 의식이 투철한 캐디로 통한다. “결승 라운드에는 선수들이 더욱 캐디의 도움을 필요로 해요. 매 샷이 결과로 직결되기 때문이죠. 그 때 캐디가 동요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해요. 늘 하던 루틴을 유지해야 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하죠. 선수가 의구심에 찬 눈빛으로 ‘7번 아이언?’ 이라고 물어도 캐디는 아주 확신에 찬 표정으로 ‘바로 그거다’라고 말해줘야 해요. 그래야 선수가 자신 있게 샷을 합니다.”

딘 허든이 익살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선수들의 심리를 편안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딘 허든 제공
딘 허든이 익살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선수들의 심리를 편안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딘 허든 제공

허든의 ‘직업 정신’은 비단 자신의 선수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같은 조에 묶인 선수가 샷을 할 때면 갤러리들에게 정숙을 요청하고, 다른 선수가 치고 나온 벙커를 정리하기도 한다. “그것은 에티켓이죠. 우리 조의 흐름을 유지 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이 플레이할 때에도 손을 들어요. 갤러리들이 시끄럽게 하면 그만큼 플레이 속도가 느려지고, 그러면 동반플레이 조 전체가 뒤처지면 결국 우리 선수 피해 아닌가요?”

그는 한국의 갤러리 문화에 대해서도 견해를 풀어놨다. 지난주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미국프로골프(PGA)투어 경기가 제주에서 열렸지만, 카메라 셔터음이 선수들에게 크게 방해가 되는 등 갤러리 매너가 대회 내내 도마 위에 올랐다. “한국의 관객 매너는 아직 어리다고 할 수 있어요. 제가 선수로 방문했던 25년 전보다 나아졌지만 아직 갈 길이 멀죠. 골프라는 스포츠에 대한 이해가 더 필요해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KLPGA투어도 어느덧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 고진영의 성공과 더불어 그 역시 캐디로서의 이름값을 더욱 높였다. 그에게 오프 시즌 계획을 물었다. “우선 한국어를 집중적으로 배울 생각이에요. 캐디와 선수 간 의사소통만큼 중요한 건 없거든요.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한국의 주니어 선수들에게 강연도 하고 싶어요. 투어 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캐디와의 관계, 매니지먼트와의 관계는 어떻게 가꿔 나가야 하는지 등 제가 가진 노하우를 최대한 그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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