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 자연에 세계 갑부 몰려
집값 폭등 서민 고통에 ‘빗장’
세계적으로 자국 보호주의 바람이 거센 가운데, 혜성처럼 나타난 뉴질랜드의 30대 여성 총리가 외국인들의 자국 주택 구매 금지를 추진하기로 해 눈길을 끌고 있다. 뉴질랜드는 치안이 뛰어나고 청정 자연환경으로 유명해 전 세계 부동산 갑부들이 최근 들어 구름떼처럼 몰려오면서 ‘세계의 부동산 1번지’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해외 큰 손들의 봇물 같은 투자로 자국민의 주거 환경이 피해를 입을 것을 우려한 노동당 출신 신임 총리 재신더 아던(37)이 ‘빗장’을 걸어 잠그기로 한 것이다.
26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과 BBC방송에 따르면 아던 총리는 전날 “외국인들이 기존 주택을 구매하는 것을 금지하는 정책에 동의한다”라며 하반기 중 뉴질랜드에 거주하지 않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주택 구입을 제한하는 법을 도입하기로 했다.
지난 총선에서 주택 문제가 최대 관심사였던 만큼 아던 총리는 취임과 더불어 관련 해법을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몇 년 사이 뉴질랜드에서는 제한된 주택 공급, 낮은 이자율, 이민 증가 등이 맞물려 집값이 폭등하면서 자국민이 집을 구매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 주택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가디언은 “1991년 국민의 절반 가량이 집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최근엔 25%가량만 자가를 갖고 있다”라며 “특히 오클랜드에서는 집을 구하지 못해 자동차와 창고, 컨테이너 등에서 살고 있는 가구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해외 투자자들에 대한 주택 구입 금지 조치는 이 같은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는 공포가 커지면서 나왔다. ‘해외 큰 손’들의 무분별한 투자가 자국 내 부동산의 값을 뛰게 하고 실거주자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외국인 투자자들은 뉴질랜드에서 4,659㎢의 땅을 사들였는데, 이는 전년대비 6배 늘어난 규모다. 가디언은 “뉴질랜드는 중국, 미국, 호주 투자자들의 최종 목적지”라며 “핵전쟁이나 테러의 위협 등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워 안전한 곳으로 통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결정에는 자국 우선주의 성향이 강한 뉴질랜드제일당의 입김이 크게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윈스터 피터스 뉴질랜드제일당 대표는 “뉴질랜드가 지금처럼 주택을 판매하지 않을 것이란 신호를 명확히 보냈다. 우리는 그 점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뉴질랜드제일당은 지난달 23일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한 정당이 나오지 않자 킹메이커로 연정협상을 주도하다 노동당, 녹색당과 정부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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