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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선거 중] “가짜 풍요” 얼어붙은 민심속 유명인들 정당난립… 혼돈의 ‘알팅그’

입력
2017.10.26 12:16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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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지지도 집권당 뱌르드니 총리

부친 아동성범죄자 옹호 전력 논란

연정 무너져 1년만에 또 선거바람

‘왕자의 게임’ 인기, 관광 훈풍 불구

서민 가난하고 정치인 부패 여전

진보 내각 복귀 예상 속 연정 귀추

아이슬란드 의회인 알팅그 의사당 ‘알팅기스후시드’의 모습. 1881년 지은 석조건물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아이슬란드 의회인 알팅그 의사당 ‘알팅기스후시드’의 모습. 1881년 지은 석조건물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유럽 서쪽 끝 아이슬란드에 있는 세계 최고(最古) 의회 알팅그(Althing)가 다시 격랑 속으로 빠져들었다. 2016년 조기총선 이후 불과 1년 만인 28일(현지시간) 다시 조기총선을 앞두고 있다. 아이슬란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시민 참여형 개헌’을 시도하며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지만, 보수 정권의 재집권으로 실패했다. 연이은 스캔들로 정치 불신이 극에 달했지만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보수 엘리트 정당은 여전히 건재하다. 여기에 기존 정당을 대체하겠다며 ‘유명인’들이 이끄는 소수 정당이 난립하면서 아이슬란드 정가는 바람 잘 날이 없다.

금융위기 이후 ‘가짜 풍요’에 민감해져

복지국가 성격이 강한 노르웨이ㆍ스웨덴ㆍ덴마크 등과 함께 ‘북유럽 국가’로 분류되지만, 아이슬란드는 이들과 달리 전통적으로 도시의 지지를 받는 아이슬란드독립당과 촌락의 지지를 받는 진보당 양대 보수 정당이 권력을 양분해 왔다. 특히 늘 20% 남짓한 지지도를 유지해 온 독립당의 위상은 정당이라기보다는 ‘국가 제도’에 가깝다. 1929년 창당 이래 덴마크로부터 아이슬란드의 독립 운동을 주도했고, 현재도 유럽연합(EU)의 통합정책에 맞서 북미-유럽 동맹의 이념적 기반인 ‘대서양주의’의 강화를 주장하는 등 아이슬란드 독자노선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2017년 독립당의 뱌르드니 베네딕트손 총리가 세운 중도보수 내각은 최악의 지지도에 허덕였다. 정부 수립 1년도 안 돼 뱌르드니 총리의 부친이 과거 아동성범죄자의 ‘명예회복’ 서류에 서명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연정 파트너 가운데 밝은미래당이 연정에서 물러서면서 내각을 유지할 수 없게 된 뱌르드니 총리는 결국 9월 조기총선을 선언했다.

사실 경제지표로만 보면 아이슬란드는 금융위기의 악몽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다. 금융산업이 무너졌지만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 등에 등장한 특유의 풍광이 각광을 받으면서 관광 수요가 급증했다. 2017년 3월 기준으로 실업률은 1.7%였고 해외로 나간 이민자들도 속속 돌아와 아이슬란드 인구는 34만명을 돌파했다.

그럼에도 정권의 지지율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다. 이는 아이슬란드 주민들의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짙음을 의미한다. 국민은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가짜 풍요’를 불신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경제성장 효과는 관광업에 집중돼 있고, 여전히 아이슬란드인 다수는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정부가 약속했던 공공사업에 대한 투자도 미비하다. 올해 3월 동부 아이슬란드에서는 주민들이 “지난 총선 때 약속했던 도로 포장 사업을 즉각 이행하라”며 자동차를 끌고 나와 아이슬란드 순환도로를 점거한 채 시위를 벌였다. 되살아난 경제가 거품이며 곧 다시 꺼질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아이슬란드를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자금이 부동산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집값이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보수 정치인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대규모 금융자본의 하수인이라는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 2013년부터 집권했던 진보당의 시그뮌뒤르 다비드 귄뢰이그손 전 총리는 지난해 전 세계를 뒤흔든 ‘파나마 페이퍼’ 폭로 사건에서 역외 조세회피처에 기업을 보유한 것이 드러나면서 여론의 맹렬한 비판을 이기지 못하고 사퇴했다. 현 뱌르드니 총리 역시 시그뮌뒤르 내각에서 재무장관을 맡았던 인물이고 ‘파나마 페이퍼’ 명단에도 들어 있었다.

아이슬란드의 차기 총리로 가장 유력한 카트린 야콥스도티르 좌파녹색운동 대표. 트위터
아이슬란드의 차기 총리로 가장 유력한 카트린 야콥스도티르 좌파녹색운동 대표. 트위터

불만 타고 난립하는 ‘명사 정당’

혼란 속에서 대안 정치를 자처하는 새로운 정당도 난립하고 있다. 소위 기존 4당으로 묶이는 중도우파 독립당과 진보당, 중도좌파 사회민주동맹(사민당)과 좌파녹색운동(녹색당) 외에 2016년 총선에만 원내에 3당이 더 등장했다. 이번 총선에선 이들 7개 정당과 원외 2개 정당이 원내 진입을 노리고 있다.

이들 정당의 선두에는 항상 기업인이나 음악가 등 ‘명사’가 있었다. 2016년 총선 당시에는 직접 민주주의를 표방한 해적당이 선전하며 이목을 끌었는데 해적당의 선두에 선 인물은 시인이자 웹개발자 출신 정치운동가 비르기타 욘스도티르였다. 출판업자 출신 베네딕트 요하네손이 이끄는 개혁당과 음악가 출신 오타르 프로페가 이끄는 밝은미래당도 명사 정당이다.

특히 밝은미래당은 코미디언 출신 욘 그나르가 이끌었던 ‘최고당’의 후신이다. 최고당이야말로 명사 정당의 대표적인 사례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창당해 6개월 만에 수도 레이캬비크를 장악하는 큰 성공을 거뒀지만, 어디까지나 사민당의 지원을 받은 집권이었고 시장으로 재임한 그나르의 임기도 특기할 것 없는 무난함 그 자체였다.

한때 진보당을 이끌었던 시그뮌뒤르 전 총리도 성향은 ‘외부인사’에 가깝다. 아이슬란드 공영방송 RUV의 기자로서 활동했던 그는 낡은 보수정당이었던 진보당에 반세계화ㆍ반무슬림ㆍ반유럽주의 포퓰리즘 색채를 불어넣어 2013년 수권까지 이끌었다. 이번 총선에서는 진보당을 나와 자신의 정당 ‘중앙당’을 창당했는데, 놀랍게도 진보당과 중앙당의 지지율은 단번에 뒤집혔다. 시그뮌뒤르를 향한 강렬한 ‘팬심’이 어느 정도 남아 있다는 증거다.

상황이 이러니 기존 정당도 뒤질 수 없다. 진보당은 페이스북 스타인 경찰 ‘비기 더 캅’을 영입했고, 과거 최고당을 이끌었던 그나르는 사민당에 발을 걸쳤다. 비정기간 잡지 ‘레이캬비크 그레이프바인’의 뉴스 편집자 폴 폰테인은 “비정치 인기인이 정치권의 전면에 나서는 것이 꼭 나쁜 건 아니지만, 현실은 그들 자신의 활동 이야기만 있고 정책은 뒷전인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물론 여론조사상으로는 기존 4당의 위상도 건재하다. 그러나 의석이 63개에 불과한 알팅그의 특성상 소수 의석으로도 충분히 판을 흔들 수 있다. 결국 총선보다는 내각 형성을 위한 다당간 협상이 정권 창출의 관건인 셈이다. 아이슬란드 언론은 보수가 분열된 반면 진보정당들은 2012년 좌절된 ‘시민 개헌’의 재추진을 위해 단일대오를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며 진보 내각이 4년 만에 돌아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녹색당의 대표인 카트린 야콥스도티르(41)가 세계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젊은 지도자’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보수와 진보 어느 진영이 집권하든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책과 이해가 서로 다른 정당들이 내각을 유지하기 위해 손을 맞잡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에이리쿠르 베르그만 에이나르손 아이슬란드대학 정치학 교수는 뱌르드니 내각이 무너진 것도 결국 스캔들 자체보다는 부실한 연정 구조가 원인이라며 “현 정부는 기반이 극도로 취약한 상태”라 지적했다. 28일 총선 후 도래할 새 정부는 정당 간 이해를 조율하고 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반감도 잠재워야 하는 무거운 ‘이중과제’를 안게 된 셈이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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