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이 5ㆍ18 민주화 운동 이후 유족 내부 분열을 조장하고 광주 망월동 민주 묘역의 성역화를 방해하는 공작을 직접 지시한 문건이 공개됐다. 전두환 정권이 시민들의 추가 반발을 진압하기 위해 군에게 공세적 시위진압 훈련을 실시하며 비상대기를 시킨 사실도 드러났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6일 공개한 국군 보안사령부(기무사령부의 전신)의 ‘비둘기 시행계획’ 문건에는 전 전 대통령이 전남도지사와 면담하는 자리에서 희생자 묘지 이장 계획을 지시했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1983년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문건에는 사망자를 연고별로 분석해 해당 시장, 군수 책임 하에 직접 순화하라는 시행방침과 함께 보안사가 만든 관변단체인 전남지역개발협의회를 앞세워 이전비와 위로금 지원으로 분묘를 적극 독려하라는 내용이다. 이 과정에서 보안사 소속인 505보안부대는 반발이 큰 유족을 별도로 사찰했고, 전남도청은 순화책임자 교육에 나서기도 했다. 묘지가 한 곳에 모여 있으면 저항의 근거지가 될 것을 우려해 군, 정부, 지자체가 분묘 작업에 총 동원된 것이다.
보상금을 이용해 유가족을 분리하고 이를 통해 일부 강경한 유가족 세력을 와해시키는 작업도 전방위로 진행된 정황도 드러났다. 박 의원이 공개한 ‘광주 사태 관련자 현황’ 문건에 따르면, 유가족을 성향에 따라 A-B-C 등급으로 분류해 보상금은 물론, 연탄 지원 내역까지 꼼꼼히 관리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철희 민주당 의원이 이날 별도로 공개한 군 보안사 6개 문건에서도 유족회 내부 분열을 유도하기 위한 전두환 정권의 구체적인 공작 내용이 확인된다. 이른바 ‘물빼기 작전’에는 “(강성) 유족회 회장, 임원진 등이 장차 정계진출을 위해 조직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역루머를 유포했다”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또 다른 문건에는 유족 중 군 관련자 및 온건한 유족회를 대상으로 ‘지속적인 접촉과 지원으로 유대관계를 형성’한다는 기본 방침이 적혀 있다.
유족뿐 아니라 전남대 학생들과 종교인 등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도 공작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미국 정보기관인 CIA와 협조했다는 사실도 공개됐다. 이철희 의원은 “전두환 정권은 5ㆍ18 당시뿐 아니라 이후 수습과정에서도 군을 대대적으로 동원했다”며 5ㆍ18 진상조사특별법 통과와 진상조사위원회를 통한 진상규명 필요성을 촉구했다.
강윤주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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