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증선위 회의 안건서 빠져
“자본확충 1년 준비했는데…” 허탈
지난 7월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꿈꾸며 초대형 투자은행(IB) 인가를 신청한 대형 증권사 5곳의 속이 타 들어가고 있다. 금융 당국 결정이 계속 미뤄지며 언제쯤 출범할 수 있을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25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내달 1일 증권선물위원회 정례회의에서도 ‘초대형 IB의 신규 지정과 단기금융업 인가’는 안건으로 다뤄지지 않는다. 금융위 관계자는 “통상 회의 일주일 전 안건이 결정되는데 아직까지 결정된 바가 없다”고 말했다. 초대형 IB 인가는 증선위 의결 후 금융위 정례회의에서 최종 의결까지 거쳐야만 확정된다.
앞서 지난 7월 자기자본이 4조원 이상인 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 등 증권사 5곳은 금융위에 초대형 IB 지정과 발행어음 업무 인가를 신청했다. 초대형 IB 인가를 받으면 만기 1년 이내 발행어음을 자기자본 2배 한도에서 발행할 수 있다. 이렇게 조달한 자금은 신생혁신기업(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 등 기술력은 있지만 자본이 부족한 기업과 인수ㆍ합병(M&A) 등을 지원하는 데 쓰일 예정이다. 이전 정부에선 기업금융 활성화를 위해 초대형 IB 육성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들어 분위기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당초 초대형 IB는 이르면 10월 인가가 결정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현재로선 연내 출범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초대형 IB 인가 심사 시 증권사 대주주의 적격성뿐 아니라 건전성도 함께 보겠다”고 말했다. 윤석헌 금융행정혁신위원회 위원장은 “초대형 IB 신용공여는 업권 간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하영구 은행연합회장도 “과거 외환위기의 단초를 제공한 단자회사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며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인가를 신청한 증권사들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초대형 IB를 위해 자기자본 확충 등 1년 이상 준비를 해 왔는데 할 수 있는 게 기다리는 것 밖에 없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증권사들은 자기자본 기준인 4조원을 맞추기 위해 다른 증권사를 인수하거나 유상증자를 통해 몸집을 불렸다.
현석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주도해 자기자본 기준에 따라 사업영역을 정해준 것 자체가 문제”라며 “시장의 진입장벽을 낮춰 경쟁을 시키고 실력이 없으면 퇴출되도록 하는 등 증권사의 경쟁력을 높일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권재희 기자 luden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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