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억 8,000만원. ‘어금니 아빠’ 이영학이 “희귀병 앓는 딸 치료비가 필요하다”며 여러 단체와 개인들에게 기부 받은 돈이다.(본보 10월 24일자 12면) 경찰 조사결과 이영학이 실제 딸 치료비에 사용한 액수는 이 가운데 1억 5,000만원도 채 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결국 10억원이 넘는 돈은 이영학이 기부 목적과 달리 사용한 셈이다. 이영학이 받아간 기부금 중 대부분이 외제차 구매 및 튜닝(개조)과 수천만원 짜리 문신 등에 펑펑 사용됐을 것이란 언론의 의심이 사실로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 선의로 도와준 사람들은 뭐가 되는 거냐”는 배신감이 기부 불신으로 이어지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여러 자선단체에서는 이영학 사건으로 인해 기부 위축이 오지 않을까 우려를 한다. 이 일로 인해 “정말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마저 외면 당할까 걱정된다”는 의견은 일리가 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리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기부금 사용 내역의 불투명 문제는 과거 여러 차례 지적이 돼온 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영학 건 외에도 후원금 128억원을 횡령한 기부단체 등 기부자를 농락한 여러 건의 기부 사기가 계속 터지고 있다.
이 대목에서 정부는 무얼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영학 건만해도 정부의 관리 감독을 통해서가 아니라, 끔찍한 살인사건이 터져 범인 행적을 쫓던 언론이 기부금 유용 정황을 발견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부금품의모집및사용에관한법률에는 ‘연간 누계 1,000만원 이상 기부금(품)을 모집하려면 행정안전부, 지방자치단체 등에 모집 목적, 목표액, 사용계획 및 모집자 정보를 등록해야 한다’(제4조)고 명시돼 있다. 이런 법 규정에도 불구하고 “인력이 부족해 미등록 모집인을 일일이 살펴볼 수 없다”는 지방자치단체 담당자의 변명만 나오고 있다.
선의의 기부자를 농락하는 현실, 정부의 직무유기를 내버려두고서 마냥 시민의 선한 의지에만 기대서는 곤란하다. 투명성이라는 밑바탕 없이 자비로운 사회를 구현할 수 없다. 시민은 부처가 아니다.
이상무 사회부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