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바와 각설이, 같을까 다를까? ‘각설이’가 떠돌이 생활을 하며 춤과 노래로 음식을 구걸하던 걸인을 뜻한다면, ‘품바’는 각설이타령 후렴구에 등장하는 의성어로 입으로 뀌는 방귀라 하여 ‘입방귀’라고도 한다. 각설이는 ‘깨달음을 전하는 말(覺說理)’이라는 불교용어로 밥을 동냥하던 탁발승려가 시초라는 설, 백제 멸망 후 나라 잃은 설움에 장터를 돌아다니며 타령을 부른 유민들이 기원이라는 설 등이 나뉘나 ‘극한 상황에 내몰린 소외된 자’들의 소리라는 데 이견은 없다.
품바의 최초 흔적으로는 1875년 신재효의 한국판소리전집에 실린 ‘가루지기(변강쇠)타령’ 한 대목이 꼽힌다. “각설이패 3명이 장타령을 부르는데, 한 명이 부르면 한 명은 입방구 낑낑치고, 또 한 명은 옆에 서서 살만 남은 헌 부채로 뒷꼭지를 탁탁치며 두 다리를 빗디디고 허릿짓 고갯짓”한다는 내용인데, 당시 각설이 한 명이 장타령을 하면 나머지 한 명이 입방귀 ‘품바’를 반복하며 장단을 맞췄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입방귀 소리에 불과했던 품바는 1981년 극작가 김시라(1945~2001)씨가 연극 ‘품바’를 발표하면서 각설이를 일컫는 대명사가 됐다. 당시 김씨는 해방 후 걸인들이 모여 살던 전남 무안군 일로읍 일명 ‘천사촌’을 방문해 각설이타령을 채록한 뒤, 광주민주항쟁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거지대장 ‘천장근’을 주인공으로 한 풍자극을 만들었다. 이 연극은 6,000회 공연을 넘기며 최다 공연, 최대 관객으로 한국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전남 무안군 각설이품바보존회 조순형 회장은 “해방 이후 거지대장 천장근씨가 돌아가신 73년까지 천사촌 걸인들이 각설이 전통 공연을 이어갔다는 점에서 일로읍이야 말로 품바 발상지”라고 말했다.
연극 ‘품바’가 대성공하면서 장터 엿장수들이 각설이타령을 배워 밤무대나 행사에 나간 것이 현재 품바의 직접적인 뿌리다. 한국품바예술인협회 사무총장 남칠도(본명 남기세ㆍ48)씨는 “1세대 품바인 형 남팔도씨를 따라 시장에서 엿을 팔다가 연극 품바 요소를 접목해 공연을 시작했다”고 했다. 남씨에 따르면 전국에서 활동하는 품바는 약 1,500여명, 한국품바예술인협회에만 400여명이 등록돼 있다. 최근에는 공연단을 갖추고 축제 공연에 나서거나 기획사를 통해 온라인 홍보를 진행하는 등 상업화 경향도 뚜렷하다.
2001년부터 최초로 품바 축제를 개최하기 시작한 충북 음성군은 품바의 근간을 ‘거지성자’ 최귀동(1919~1990년) 할아버지 삶에서 찾는다. 자신도 장애를 가진 몸으로 음성 금왕읍 무극리 일대를 돌아다니며 밥을 얻어다가 구걸조차 하지 못하는 걸인들을 먹여 살린 최 할아버지의 박애가 품바 정신이라는 것이다. 품바 정신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사랑을 베푼 자만이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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