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주인 이름으로 개명후
주민등록증 위조해 범행

서울 강남구 타워팰리스에 사는 주부 김모(69)씨는 지난해 12월 초 경찰의 전화를 받고 화들짝 놀랐다. 30여 년 전 부모님이 물려준 충남 서산의 임야 2만3,000여㎡가 한달 여 전 팔렸는데 직접 거래했느냐는 것이다.
땅을 매각한 사실이 없던 A씨는 당시 전화금융 사기범으로 오해했으나 자신의 땅 주인 행세를 하면서 헐값에 매매계약을 체결, 수억 원의 계약금을 가로챈 사기범들을 잡았다는 경찰의 설명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랫동안 거래가 없는 땅만 골라 사기행각을 벌여온 현대판 ‘봉이 김선달’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기 안산상록경찰서는 사기, 공문서위조 등 혐의로 총책 박모(52)씨 등 3명을 구속하고 법무사 사무장 이모(74)씨 등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4일 밝혔다. 박씨 등은 지난해 11~12월 이씨의 땅 2만3,000㎡를 공시지가(39억원)보다 낮은 35억원에 부동산 시행업체 대표 A씨와 매매계약을 체결, 계약금 3억5,000만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이 땅이 수십 년간 거래가 없는 것을 알고 주인 행세를 할 사기단원 김모(64ㆍ여ㆍ구속)씨를 끌어들여 진짜 땅 주인의 이름으로 개명시킨 뒤 주민등록증까지 위조해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오랫동안 권리 이전이 없던 땅의 소유자 이름, 주소, 지문 등은 한 동사무소 사회복무요원 이모(22)씨의 아버지(52ㆍ구속)를 꾀어 알아냈다. 수사결과 이들이 조회해 습득한 개인정보는 7건이었다.
경찰은 평택 소재 85억원 상당의 토지 2만8,000㎡의 주인 행세를 하면서 부동산 담보대출을 받으려 한 김모(53)씨 등 14명(3명 구속)도 함께 검거했다.
정삼수 안산상록경찰서 경사는 “피의자들은 1975년 현재의 주민등록체계(13자리)로 변경되기 이전에 등기부등본이 생성된 뒤 줄곧 거래가 없는 토지만 노렸다”며 “이 등본에는 소유자 주민번호가 없어 매수자들이 서류를 활용, 진짜 주인을 가려내는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유명식기자 gij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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