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 5ㆍ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성공적 모델로 주목되고 있다. 향후 공론화 절차가 다양한 사회갈등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하면서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공론화위원회는 공론조사를 포함해 다양한 방식으로 공론을 조사해야 한다. 공론(public opinion)을 조사하는 방법은 공론조사(deliberative polling) 외에도 시민배심원제, 시나리오 워크샵 등 다양하다. 우리나라에선 ‘deliberative polling’을 ‘공론조사’로 번역하다 보니 공론을 조사하는 방법으로 공론조사만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공론조사의 신뢰성이 높기는 하나 이 역시 공론을 조사하는 수단 중의 하나이다.
둘째, 공론화 절차는 국민의 선호를 파악하는 과정이므로 가급적 근본적이고 단순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번 공론화 절차도 신속한 탈원전, 점진적 탈원전, 원전비중 유지ㆍ확대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는 게 옳았다. 신고리 5ㆍ6호기 건설중단 여부는 상대적으로 지엽적이고 복합적인 질문이었다. 지엽적이고 복합적인 결정은 정부와 전문가의 몫이다. 결국 공론화위는 신고리 5ㆍ6호기 완공여부만 묻는다는 당초 취지에도 불구, 탈원전에 대한 질문도 포함하였는데 이는 잘한 일이었다.
셋째, 공동의 사실확인(joint fact-finding) 기간을 충분히 잡아야 한다. 공론조사는 국민의 판단이 쉽도록 선택 대안이 명확해야 한다. 즉 건설을 중단하면 전기요금 인상폭과 원전 업계의 피해는 어떠한지, 원전 2기 건설 중단으로 안전성이 얼마나 커지는지가 명확해야 국민은 선호를 결정할 수 있다. 양측 전문가들이 구체적 숫자에 합의하면 가장 좋으나, 안 되면 숫자의 범위에라도 합의해야 한다. 이견이 존재하는 경우 그 이유도 정확히 밝혀야 한다. 양측이 전혀 다른 숫자를 내어 놓고 국민에게 판단케 하는 것은 선호를 묻는 것이 아니라 양측의 신빙성을 묻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세 달의 기간은 좀 짧았다. 마지막 한 달은 시민참여단이 공부를 하는 숙의기간이었는데 오히려 긴 편이었다. 공동의 사실확인에 양측 전문가들이 더 노력했어야 한다.
넷째, 오차범위 내에서 찬반이 갈릴 경우에 대한 해석방법을 미리 정해 놓아야 한다. 찬반이 오차범위 내에 있을 경우에는 현상유지가 원칙이다. 이번 경우, 공론형성 이전에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으므로 공사진행을 현상으로 보아야 한다. 다행히 찬반이 19% 차이로 갈렸기 망정이지 근소한 차이였으면 하나마나 한 공론화위원회가 될 뻔했다.
끝으로 향후 공론조사가 적용 가능한 갈등사안을 잘 선정해야 한다. 1) 정책결정에 국민의 선호가 중요한 사안이어야 한다. 이자율은 매우 중요한 결정이지만 국민선호는 묻지 않고 전문성에 따라 금통위가 결정한다. 개인은 경제전반의 파급효과 보다는 개인적 이해관계에 따라 이자율 결정에 답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에너지 정책은 국민의 선호와 전문적 판단이 결합되어 결정되어야 한다. 개인이 집을 지을 때 난방방식을 선택하는 것처럼, 국가의 에너지원 선택에 국민도 참여해야 한다. 2) 국민 전체가 비슷한 정도로 관련 되는 사안이어야 한다. 이해당사자가 특정된 경우에는 공론조사보다는 그 당사자간 합의방식을 택해야 한다. 송전탑과 같이 특정 지역의 이해관계가 압도적으로 중요한 경우에는 전국 단위 공론화는 부적절하다. 전체 국민의 이름으로 일부 지역에 피해를 강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공론조사에서 지역별 조사결과를 공개한 것도 이런 점에서 잘한 일이다. 3) 공론조사가 언론을 통한 단순 정보를 뛰어 넘는 심층정보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정당별 대선후보 결정은 공론조사를 해도 언론의 정보와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공론화 절차는 정책결정에 국민의 선호를 반영하는 효과적인 제도이다. 많이 활용되기를 바란다.
박진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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