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벳 A부터 Z까지의 26자를 우리가 흔히 ‘영문자’라고 일컫고 이를 줄여서 ‘영자’라고도 한다. 그러나 언어학이나 국어 정책 분야에서는 이 알파벳 문자를 이런 표현 대신에 본래의 제 명칭에 가까운 ‘로마자’ 또는 ‘라틴 문자’로 이르고 있다. 이 가운데에서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기본으로 삼고 있는 표현은 ‘로마자’인데, 사전의 주된 뜻풀이는 다음과 같다.
「1」 라틴어를 적는 데 쓰이는 음소 문자. 그리스 문자가 이탈리아 지방에 전해진 후 변형된 데서 유래하였으며, 기원전 7세기경에 초기 형이 성립하였다. 자음자 18개, 모음자 4개, 반모음자 1개 등 자모는 23자이다. ≒라틴 문자.
「2」 =영문자.
「3」 ‘「1」’에서 파생하여 지역에 따라 새로운 글자나 변형된 글자가 추가된 영어의 문자, 노르웨이의 문자, 체코의 문자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즉, 본래의 23자에 세 글자(J, U, W)가 추가되어 26자가 된 알파벳이 ‘영문자’나 ‘영자’라기보다는 ‘로마자’가 더 정확하다고 전문 분야에서는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26자를 영어에서 사용하는 것은 맞으나, 영어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언어에서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자로서의 정체성이 확립된 곳의 이름이 들어간 ‘로마자’가 더 나은 것으로 취급된다. 더구나 ‘영자 신문’ 등의 표현에 이르면 ‘영어 신문’이어야 할 것이 아주 잘못된 것이므로 전문가들에게는 거부감이 더한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로마자’와 ‘영문자’, ‘영자’는 광범위하게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 현실이 위의 뜻풀이 2번에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또한 영어가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우리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김선철 국립국어원 언어정보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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