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끝없이 투명에 가까운 파란 하늘을 뚫고 눈부시게 맑은 햇살이 내려앉는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가을햇살이 색색으로 물든 산간 수목의 잎사귀들을 아름답게 비추었다. 가슴털이 하얀 작은 새들이 가지에서 가지로 날아다니며 요령 좋게 붉은 과실을 쪼아먹었다’고 가을풍경을 그렸다.
풍요로움에 행복이 여무는 계절이지만, 그리움이 여무는 계절이기도 하다. 바람이 불고 낙엽이 지면 우수에 젖어 그리움이 깊어진다. 그래서 김남조 시인은 ‘가을 햇볕에’에서 ‘보고 싶은 너 가을 햇볕에 이 마음 익어서 음악이 되네’라고 ‘그리운 너’를 하나씩 그려본다.
그리움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으로 다가온다면 편지만한 게 없다. 그것도 손으로 쓴 편지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손에 쥔 휴대전화로 이메일, 문자메시지, SNS 등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손으로 쓴 편지에 비할 바는 아니다. 손편지는 쓰는 사람의 마음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다.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쓴 편지에는 마음을 흔드는 마법이 숨겨져 있다. 손편지는 받는 사람에게 행복도 가져다 준다. 노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날려가고 지나는 사람들 같이 저 멀리 가는 걸 보며 손편지를 읽으면 애틋한 그리움은 어느새 잔잔한 감동으로 바뀐다. 그래서 누군가 그리울 땐 펜을 든다.
그리움이 묻어있는 편지는 집배원의 손을 거쳐 빠짐없이 전달된다. 집배원을 사랑의 전령사, 행복의 메신저라는 부르는 이유다. 아주 옛날에는 걸어서, 이후에는 자전거로, 지금은 오토바이와 차량으로 전해주고 있다. 집배원은 꾸준히 늘었다. 편지가 급격히 줄었지만 소포와 택배가 많아지면서 배달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자긍심을 가슴에 품고 오늘도 저마다의 사연을 이어주고 있다. 두 달 전부터 노와 사, 전문가 그룹이 머리를 맞대고 있으니 집배원들의 배달여건은 더욱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
손편지는 마음과 마음을 잇는 다리이다. 게다가 차가운 디지털에 온기를 불어넣기도 한다. 얼마 전 경북 구미의 한 초등학교에 한 통의 손편지가 도착했다. 보내는 사람은 임지훈 카카오 대표였다. 카카오프렌즈 캐릭터가 그려진 편지에 또박또박 손글씨로 편지를 썼다. 내용은 학생들이 제안한 카카오톡 개선안에 대한 답장이었다. 학생들이 스마트폰 메신저를 사용하면서 한글을 잘못 사용하는 일이 많아 의견을 보냈는데, 아이디어가 구체적이고 참신해 카카오는 검토에 들어갔고, 손편지로 고마움을 전한 것이다. ICT의 첨단을 달리며 사실상 편지를 대체하고 있는 스마트폰 메신저의 대표가 손편지를 쓴 이유는 뭘까? 손편지만이 온전히 마음과 마음을 이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고은 시인은 ‘가을편지’에서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라고 했다. 가을은 편지를 쓰기에 더 없이 좋은 계절이다. 낙엽 쌓인 공원에서 파란 하늘을 바라보면 누구나 가슴이 두근거린다. 마음을 적어 편지를 쓰자. 누구에게라도 좋다. 빈 공간에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펜 끝은 그에게 달려가고 있을 것이다.
송관호 우정사업본부 우편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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