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 공론화위 성과에도 비판 일관
외교안보 사안 무조건 비판은 무책임
옳은 정부 정책 평가하는 용기도 필요
신고리 5ㆍ6호기 공론화 위원회의 공사 재개 결정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야당의 공세가 이어지고 있다. 물론 맞는 얘기도 있지만 대부분 트집성이 다분한 비난이다. 자유한국당이 23일 노무현 정부 초반 경부고속철 천성산 터널공사 중단 사태 판박이라며 비난한 게 대표적이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는 천성산 정상부근 습지 등 생태계 파괴 논란이 일자 이 구간 노선의 백지화를 공약했고 당선된 후 공사 전면중단과 노선 재검토를 지시했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탈원전 차원에서 신고리 5ㆍ6호기 공사 중단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대통령 취임 후 공사를 중단토록 한 것과 거의 비슷하다. 여기까지는 판박이가 맞지만 문제해결 과정은 전혀 달랐다. 천성산 터널 갈등은 지율 스님의 단식 등 극한투쟁을 동반하며 4년여를 끌었고, 국토교통부 및 상공회의소 추산 2조5,000억원의 피해를 초래했다.
반면 이번 신고리 5ㆍ6호기 공사 중단을 둘러싼 갈등은 공론화위원회 활동을 통해 3개월 만에 매듭을 풀었다. 시공업체들의 피해 등 1,000여억원의 손실이 작다고 할 수 없지만 천성산 갈등으로 우리 사회가 치른 막대한 대가에 비할 바가 아니다. 공론조사에 참여한 시민들이 진지한 학습과 토론을 통해 최선의 선택을 찾아가고, 생각이 달라도 결과에 승복하는 모습은 분명 새로운 길이었다. 짧은 숙의 기간 등 미흡한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대형 국책사업 등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 해결의 모델이 되고 숙의민주주의의 가능성을 확인한 성과가 있었다. 밀집도가 기형적으로 높은 우리 원전의 미래에 대해 사회 전체가 진지하게 돌아보는 계기도 됐다.
한국당이 제대로 된 정당이라면 적어도 이런 점은 인정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공론화위원회의 성과를 돋보이게 하는 천성산 갈등 사례를 엉뚱하게 문 대통령을 비난하는 데 끌어다 붙였다. 한국당이 정부 정책 결정 과정에 대한 정당한 평가보다는 비판을 위한 비판에 골몰한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당초에는 공사 중단 기정사실화를 위한 형식적 절차라고 비난했다. 여기에는 권력이 공론화위원회를 배후에서 조정해 원하는 결론으로 몰아갈 것이라는 불신이 깔려있었겠지만 문 정부는 끝까지 중립을 지켰다. 한국당은 이런 측면을 평가하기는커녕 또 다른 트집을 잡아 정권 비난에만 급급하고 있다.
다른 야당인 국민의당과 바른정당도 별반 다르지 않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문 대통령의 한 마디로 신고리 5ㆍ6호기 공사가 멈췄고, 공사 재개라는 뻔한 상식으로 돌아는 과정에서 1,046억원을 날렸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탈원전과 신고리 5ㆍ6호기 공사중단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데는 그만한 여론이 있었다. 안 대표가 존재감이 희미해지는 국민의당을 되살리기 위해 사사건건 정권 비판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는 처지임을 알지만 국정운영의 복잡성과 무게를 생각할 때 너무 일방적이고 무책임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야당들이 헌법재판소장 대행 체제 논란을 끊임없이 이어가는 것도 문제가 있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뒤 문 대통령이 김이수 대행체제를 그대로 밀고 나가겠다고 것은 명백히 잘못 됐다. 이에 대한 야당의 거센 비판도 당연했다. 하지만 대통령 추천 몫 헌재 재판관 후보자를 내정하고 9인 헌법재판관 체제를 복원한 뒤 그 가운데서 헌재소장을 임명하겠다고 밝혔는데도 계속 몰아세우는 것은 지나치게 정쟁적이어서 국민의 피로감을 키울 뿐이다.
야당들은 북 핵ㆍ미사일 문제 등 국가의 명운이 걸린 외교안보 사안도 무조건 비판부터 하고 본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제약, 남북관계의 특수상황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다. 천방지축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조금만 의견이 달라도 '한미동맹 균열'이고 ‘코리아 패싱’이라고 정부를 흔든다. 정권의 잘못을 예리하게 지적하면서도 어떤 세력이 집권해도 부닥칠 수밖에 없는 사안에 대해서는 정권과 고민을 함께 하며 잘한 정책은 평가해주는 야당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일까.
논설실장 wksle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